1998 박세리 맨발 투혼...IMF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 위로
2020 김아림 최저랭커 우승...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 희망
세계 여자골프에서 가장 권위 있고 전통 있는 대회로 꼽히는 US여자오픈(1946년 창설)에서 한국 낭자가 또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랭킹 94위’ 김아림은 15일(한국시각) 미국 텍사스 휴스턴 챔피언스 골프클럽 사이프럿 크리크 코스에서 펼쳐진 ‘LPGA(여자프로골프)투어 US여자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4타를 줄이며 합계 3언더파 281타로 우승했다.
선두에 5타 뒤진 가운데 최종 라운드를 출발한 김아림은 16~18번홀에서 날카로운 아이언 샷으로 3연속 버디를 잡았다. 공동 선두로 마지막 18번홀(파4)에 들어선 김아림은 버디를 잡고 단독 선두에 오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승 상금 100만 달러(약 10억9000만원)를 받았고, LPGA 투어 출전권도 확보했다. 비회원이자 최저랭킹으로 우승 신화를 쓴 김아림을 바라보는 팬들도 얼떨떨하다. 김아림은 경기 후 LPGA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얼떨떨하다.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올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실감나지 않는다”며 놀랐다.
남자골퍼들의 최고 목표가 마스터스라면, 여자골퍼들에게는 US여자오픈이다. 그런 대회에서 한국 여자골프는 박세리부터 김아림까지 무려 11번째 우승 트로피를 품었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 선수가 US여자오픈을 7차례나 들어 올렸다.
1998년 맨발 투혼으로 정상에 등극한 박세리는 환희와 감동을 선사했다. 당시 태국계 미국 골퍼였던 제니 추아시리폰과 연장 라운드를 치렀던 박세리는 해저드 턱에 걸린 공을 쳐내기 위해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샷을 하는 투혼을 불사르며 우승했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 금융에 따른 외환 위기로 실의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큰 위로가 된 순간이다.
‘세리 키즈’의 시작을 알리는 전설의 장면을 시작으로 한국 선수들은 US여자오픈에서 10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2005년 김주연(버디 김)이 기적의 벙커샷 홀인으로 대회 정상에 올랐다. 2008년 박인비가 역대 최연소(만 19세 11개월) 우승을 차지한 이후 US여자오픈은 ‘약속의 땅’이 됐다. 지은희-유소연-최나연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박인비는 2013년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환희를 맛봤다.
2015년에는 전인지가 첫 출전에서 메이저 퀸이 됐다. 2017년 박성현, 2019년 이정은6은 US여자오픈 우승을 바탕으로 LPGA 투어 신인왕의 영광을 안았다.
환희와 감동, 위로와 희망이 됐던 US여자오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여파로 사상 처음 12월 열린 올해도 한국 선수가 가져갔다.
김아림이 US여자오픈 출전권을 획득할 당시 랭킹은 70위. 통산 2승을 차지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야 장타자로 유명하지만, LPGA에서는 출전권조차 간신히 얻은 무명이었다.
LPGA 투어 비회원 한국 선수가 US 여자오픈 정상에 등극하는 대반전을 일으켰다.
마스크를 벗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김아림은 미소 띤 얼굴로 LPGA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얼떨떨하다. 공격적으로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이 시국에 이렇게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내 플레이가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에너지가 됐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