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OED)이 9월 초 최신판에 한국 단어 26개를 추가했다는 것이 최근 화제가 됐다. OED 측은 이달 5일(현지시간) 공식 블로그에 ‘대박! OED가 K-업데이트를 했다’(Daebak! The OED gets K-update)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 측이 스스로 이번 사건을 큰 사건이라고 의미부여한 것이다.
이 일이 최근 화제가 된 것은 ‘오징어 게임’이 대흥행을 하면서 한국 콘텐츠, 한국 문화가 새삼 주목 받고 있기 때문이다. CNN은 ‘한류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휩쓸었다’고 보도하며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K팝에서부터 넷플릭스가 ‘최대의 쇼’라고 극찬한 ‘오징어게임’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의 팬들이 탐내는 오락거리를 쏟아냈다”, “아시아와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오락 유행을 표현할 때 ‘한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제 이 단어가 OED에 추가됐다”고 했다.
한류 이외에 ‘K드라마(K-drama)’, ‘트로트(trot), 만화(manhwa), 먹방(mukbang)' 등 한국 콘텐츠 관련 단어도 등재됐다. 요즘 서구권에서도 화제가 된 먹방은 ’한 사람이 많은 양의 음식을 먹으며 시청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생중계하는 영상‘이라고 풀이됐다. 만화 등재는 최근 한국 웹툰의 국제적 인기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반찬(banchan)’, ‘잡채(japchae)’, ‘김밥(kimbap)’, ‘동치미(dongchimi)’처럼 먹을거리를 표현하는 단어도 들어갔다. 이제 잡채를 코리안 누들 샐러드라는 식으로 번역하지 않아도 된다.‘치맥’은 ‘맥주와 영어 단어에서 빌려온 튀긴 닭을 뜻하는 치킨의 합성어. 프라이드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K-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한국 밖에서 대중화됐다‘고 풀이되며 등재됐다.
드라마 유행어가 등재되고 그 뜻풀이에 드라마가 직접 언급된 것에서, 이번 한국어 등재에 한류 유행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 수 있다.
‘누나(noona)’, ‘오빠(oppa)’, ‘언니(unni)’도 등재됐는데 형은 없다. 케이팝 팬들이 형이라는 단어를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형을 제외하고 케이팝 팬들이 많이 쓰는 단어가 등재된 것으로 보인다. OED 측은 ‘‘oppa’와 ‘unni’는 한국 밖에서 사용될 때 주목할 만한 변화를 겪어왔다‘며 ’K-pop이나 K-drama 팬들은 ‘unni’를 자신의 성별과 무관하게 그들이 좋아하는 한국 여성 배우나 가수를 부를 때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케이팝 팬들이 여성들을 중심으로 형성되다보니 ’오빠‘, ’언니‘를 많이 외쳤는데 그게 동남아시아에 널리 퍼지면서 남녀성별을 떠나서 케이팝 스타를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오징어 게임‘ 속 대사 오빠가 ’old man' 이라고 번역됐다고 해서 부실 번역 논란이 있었는데, 이번에 영어 사전 등재까지 됐으니 앞으론 오빠를 그냥 ‘oppa’라고 번역하면 될 것 같다.
우리는 한국식 영단어를 ‘콩글리시’라는 콩글리시 단어로 표현해왔는데 이번에 콩글리시도 등재됐다. 대표적인 콩글리시 단어인 ‘파이팅’, ‘스킨십’도 등재됐다. 이밖에 중국 일각에서 원조라고 강변하던 ‘한복’, 일본에서 탐을 내던 ‘갈비’도 등재됐다.
사실 이런 단어 등재 자체가 대단한 사건은 아니다. 영어는 그들의 세계 공용어로서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각 지역의 표현을 흡수해왔다. 우리 김치도 이미 1976년에 OED에 등재된 바 있다.
그래서 등재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그동안 한국 단어가 비교적 외면당하다가 이번에 대거 26개 단어가 한 번에 등록됐다는 점, 이것을 OED 측이 스스로 ‘대박!’이라고 하면서 의미부여했다는 점, 그리고 해외 매체들도 이 사건에 주목했다는 점 등에 의미가 있다.
OED 편집팀은 ‘한국 문화 열풍이 1990년대 아시아에서 시작돼 2010년대에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된 것을 반영했다’며 ‘한국 스타일은 이제 쿨함의 전형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했다. BBC는 ‘’오징어 게임‘을 보거나 BTS의 히트곡을 들으며 아마도 당신은 삶 속에서 한국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라면서 ‘한국의 영향력이 OED까지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한류로 인해 한국의 위상이 급격히 올라갔고 그 결과 한국말까지 주목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으로 더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자 이 사전 등재 사건도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렇게 급격하게 위상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단어가 등재될 것으로 보인다. 떡을 라이스 케이크라는 식으로 억지스럽게 번역하는 시대가 머지않아 종식되고, 콩글리시도 보다 당당하게 쓸 수 있게 될 것 같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