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수소경제 이어 尹정부에서도 '민관 팀플레이' 기대
정의선 회장, 미래 성장동력으로 UAM‧로보틱스 집중 육성
안철수 인수위원장 "미래 모빌리는 한국 먹여 살릴 국가 전략산업"
5월 10일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재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전망이다. 이전 정부에 비해 전반적인 기업 경영여건은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기업별로 주력 업종과 새 정부 정책기조와의 연계성, 총수의 성향 등에 따라 상황은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윤 정부 출범을 계기로 주요 대기업 집단별 기상도를 그려본다.[편집자 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미래산업 육성 정책인 ‘수소경제’ 분야 핵심 역할을 수행해 왔다. 정 회장은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미래 먹거리 발굴에 있어 민관 경제협력의 합(合)을 맞출 것으로 큰 기대를 받고 있어, 날씨에 비유하면 ‘맑다 못해 과다한 일조량’을 견뎌내야 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수소사업 외에도 시장 개척에 성공한다면 한국의 미래 전략산업으로 자리 잡을 만한 사업 아이템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미 시장이 열려 레드오션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전기차 분야는 접어두더라도, 도심항공모빌리티(UAM)나 로보틱스와 같은 미래 모빌리티 산업은 윤석열 정부 임기 중 육성 지원 여부에 따라 미래 산업 판도를 바꿀 수 있을 만한 유망 사업들이다.
새 정부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맡은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도 미래 모빌리티를 ‘앞으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핵심 사업’으로 지목했다.
안 위원장은 지난 8일 경기도 화성 현대차·기아 기술연구소(남양연구소)에서 정의선 회장을 만나 “미래 모빌리티 산업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이을 국가 전략산업이자 과학기술중심국가 건설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정 회장은 “앞으로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이 국가산업의 미래를 견인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현대차그룹은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을 강화해 대한민국이 글로벌 혁신 선도국가로 전환하는데 기여하겠다”고 화답했다.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연구개발(R&D) 핵심 거점인 남양연구소에서 안 위원장은 현대차그룹의 UAM, 로보틱스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며 PAV(개인용 비행체) S-A 구동 목업, 웨어러블 로봇, PnD(Plug and Drive)모듈, DnL(Drive and Lift) 모듈 등의 시연을 참관했다.
정의선 '1800조원 UAM 시장 선점' 전략, 尹 정부와 호흡 맞춰야
UAM은 대표적인 미래 교통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유망 사업이다. 현재 자동차가 한국의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함은 물론, 부품‧소재 등 산업 전반에 큰 파급 효과를 주는 것처럼 UAM이 앞으로 자동차에 버금가는 대중교통수단이나 개인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을 경우 국가적인 미래 먹거리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2020년 79억달러(약10조원) 규모였던 글로벌 UAM 시장이 2040년에는 1조5000억 달러(약 180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경영 전반을 실질적으로 이끌던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UAM 사업을 추진해 왔다. 2019년에는 관련 사업을 전담하는 UAM사업부를 신설하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 항공연구총괄본부 본부장 출신 신재원 박사를 영입해 지휘를 맡겼다.
2020년 1월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0’에서 정 회장이 우버와 공동으로 개발한 PAV(개인용 비행체) 콘셉트 ‘S-A1’을 공개하고 UAM 사업 비전을 밝혔다.
당시 정 회장은 2028년까지 PAV를 상용화해 UAM 사업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완성차 사업을 통해 구축한 대량생산체제를 바탕으로 UAM 사업에서도 높은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UAM 상용화는 완성차 업체의 최대 고민거리인 일감 축소에 따른 고용불안 문제도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오히려 더 큰 규모의 고용을 창출할 수도 있다.
도심을 하늘길로 연결하는 UAM 사업이 상용화되려면 정부와의 팀플레이가 필수적이다. 주요 거점에 착륙장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항공 교통 관련 법규도 UAM 시대에 맞춰 전면 개정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이 목표로 한 2028년까지 UAM을 상용화하려면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제반 여건들이 마련돼야 한다. 정부와 현대차그룹간 세심한 조율을 통해 UAM 관련 법규와 인프라 구축, PAV의 개발과 양산체제 구축 스케줄을 상호 연계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 대체할 로보틱스, 성장 잠재력 무한대
로보틱스도 앞으로 한국 산업의 미래의 한 축이 될 만큼 성장 잠재력이 큰 분야다. 현재는 산업용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고 있지만, 앞으로 개인의 일상생활까지 파고든다면 시장은 무한대로 커질 수 있다.
정의선 회장은 올해 1월 ‘CES 2022’ 현장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로봇이 점점 인간과 가까워지고 있다. 그들(로봇)은 인류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며 “매일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언젠가는 사람들이 스팟(보행 로봇)을 데리고 다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용 로봇이 스마트폰처럼 일상화된다면 해당 산업을 선점하는 기업과 국가는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로보틱스 분야는 기계, 전자, 소재, ICT 등 각 분야의 첨단기술이 집약돼 있어 기술의 융합을 통해 신사업 영역을 광범위하게 창출할 미래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성장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일찌감치 로봇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해 왔다.
2018년 로봇 분야를 전담하는 로보틱스팀을 신설했고, 이후 실급 조직으로 격상한 로보틱스랩을 중심으로 로보틱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 회장이 지난 2019년 10월 임직원들의 타운홀 미팅에서 “현대차그룹 미래 사업의 50%는 자동차, 30%는 UAM, 20%는 로보틱스가 맡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지금까지 현대차그룹 미래 사업 구상의 핵심으로 회자되고 있다.
정 회장의 취임 이후 단행한 가장 큰 M&A도 바로 로보틱스 기술 선도 기업인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였다. 2020년 12월 소프트뱅크로부터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배 지분 인수를 결정한 뒤 지난해 6월 거래를 마무리했다.
지분 투자에는 현대차(30%), 현대모비스(20%), 현대글로비스(10%) 뿐 아니라 정 회장 개인도 사재를 동원해 20%의 지분을 확보했다. 로보틱스 사업에 대한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미국 3대 로봇 클러스터 중 하나인 보스턴에 거점을 두고 있는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 2족 직립 보행이 가능한 로봇 ‘아틀라스(Atlas)’ 등 다양하고 혁신적인 로봇 개발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로보틱스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연구개발 역량과 글로벌 사업 네트워크를 활용해 로봇 부품 제조부터 스마트 물류 솔루션 구축까지 로봇공학을 활용한 그룹 차원의 새로운 가치사슬을 창출하고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업체로의 전략적 전환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올해 CES 2022에서도 현대차의 주력 전시 기술은 로보틱스였다. 사물과 결합해 이동성을 부여할 수 있도록 설계된 PnD 모듈과 전천후 동력‧조향‧자세제어 기능을 갖춘 DnL 모듈을 중심으로, 이들 모듈을 탑재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콘셉트 모델을 선보였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수소사업 모델이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코드가 맞았다면, UAM과 로보틱스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는 윤석열 정부의 당면 과제인 국가 전략산업 육성과 고용 창출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아이템”이라며 “그동안 수소경제의 선봉에 섰던 정 회장이 새 정부에서도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선봉에 서는 그림이 그려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