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활력·민생 활력 앞세워
서민·기업 동시 세금 부담 완화
줄어든 세수에 재정 악화 우려도
정부는 21일 ‘경제 활력 제고’와 ‘민생 안정’을 핵심으로 2022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소득세법 개정과 법인세율·과세표준 조정, 종합부동산세, 상속·증여세 손질 등이 주요 내용인데 서민과 기업 모두 세금 부담을 줄이는 게 특징이다.
이번 세제개편은 전반적으로 ‘감세’가 초점이다. 15년 동안 손질이 없었던 소득세는 물론 법인세, 종부세, 상속·증여세 모두가 세금 부담 완화 방향으로 간다. 정부는 “현행 조세 제도가 과도하게 규제 목적의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조세 원칙이 훼손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아 민간의 효율적 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있다”고 세제개편 이유를 설명했다.
현행 제도가 과도하게 규제 목적의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한 대목은 조세 부담 증가 속도를 의미한다. 조세부담률 자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으나 증가 속도는 3위 수준이다. 그 결과 국세 수입이 최근 2년 만에 100조원 가까이 늘었다. 과거에는 100조원의 세수가 늘어나기까지 10년이 걸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과도한 증가 속도를 보인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에 정부는 크게 소득세와 법인세, 상속·증여세, 보유·거래세, 종부세를 이번에 손보기로 했다. 소득세 경우 물가는 오르는데 과세표준과 세율은 그대로이다 보니 월급쟁이들의 ‘유리 지갑’을 소리 없이 털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길게는 15년 동안 과세표준 구간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물가 상승에 따른 사실상 ‘소리 없는 증세’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정부는 소득세 최저세율(6%) 적용 기준을 1400만원으로 확대했다. 15% 세율 구간도 1400~5000만원으로 늘렸다. 24% 세율 역시 5000~8800만원으로 바꿨다. 나머지 구간은 같다.
소득세 개편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다만 일각에서는 예상과 달리 소폭 개편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5000만원 이하 소득자 가운데 일부만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중산층 세부담이 줄면서 수요를 자극해 물가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제개편 발표에 앞서 지난 19일 진행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파격적으로 낮추면 좋겠지만 5000만원 이하 구간은 의욕적으로 했다”며 “최근 고유가와 고물가에 따른 서민·중산층 세부담 경감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법인세도 세율과 과세표준 구간을 조정했다.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3%p 낮췄다. 더불어 현재 매출액 2~5억원 기업에 20% 세율을 적용 중인데, 중소·중견기업은 10%로 줄어든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을 지원하기 위해 세율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인세 인하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정부가 법인세 인하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경제계는 일제히 환영한 반면 시민단체에는 비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새 정부가 향후 5년간 ‘민간 주도’ 원칙 아래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한 기업 활력 제고와 산업·기업 경쟁력 강화에 역점을 쏟기로 한 것은 적절한 방향이라고 본다”고 환영했다.
반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국회예산정책처가 이명박 정부 당시 추진한 감세 정책을 분석한 보고서를 근거로 “정부는 법인세 최고구간 세율을 낮추면서 낙수효과를 통해 투자와 소비가 증가하면 경제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복합위기 상황, 기업 경제 살려 세수 채울 것”
법정 다툼으로까지 번진 종부세도 개편 대상이 됐다. 이번에 다주택 중과를 없애고 현행 주택 수 기준에서 가액 기준 과세로 전환하기로 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정부는 종부세 개편 이유로 “부동산 시장 관리 목적에서 벗어나 세제를 정상화하고 1주택자와 다주택자 간 주택 수에 따른 세부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납세자 담세력에 맞는 과세를 위해 다주택자 중과 제도를 폐지하고 가액 기준 과세로 전환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종부세 ‘가액 기준 과세’ 방향에는 동의하는 모습이다. 다만 일부는 이번 종부세 개편이 과세 형평성을 바로잡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실상은 보유세 약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부자 감세에 대한 우려다.
상속세는 가업상속공제 실효성을 높였다. 중견기업 범위를 매출액 1조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가업영위기간에 따른 공제 한도도 최대 1000억원까지 늘렸다. 증여세 역시 과세특례 한도를 확대하고 업종 변경 제한 완화, 사후관리 기간을 단축했다.
세제개편이 감세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레 국가 재정에 대한 우려가 뒤따른다. 특히 이번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만큼 줄어든 세수에 대한 보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 계산에 따르면 이번 세제개편으로 줄어드는 근로자 관련 세수는 3조20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소득세 과세표준 조정으로 1조6000억원, 식대 비과세 한도 확대 5000억원, 근로·자녀장려금 7000억원, 교육·주거·기부금 공제 확대 6000억원이다. 반면 총급여 1억2000만원 초과 근로자들은 세액공제 한도 축소로 2000억원 정도 세수 증가가 기대된다.
법인세 감면으로 줄어든 세수는 대기업 4조1000억원, 중소·중견기업 2조4000억원으로 총 6조5000억원 정도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종부세 등 기타 감세 정책으로 세수 감소 폭은 더 커진다.
김치형 경제평론가는 “재정 건전성 문제라든지 이런 부분에 있어서 세금을 덜 걷겠다고 하는 거는 분명히 정부 수익이 줄어든다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대안 또한 정부가 갖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에 추 부총리는 “순차적으로 총 13조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는 데 내년에는 6조원 정도가 감소할 것”이라며 “세금 부담을 덜고 기업이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려면 이 정도 조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지금 우리 경제는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상황에서 고물가 등으로 민생경제의 어려움이 지속하는 복합위기”라며 “정부는 물가안정, 민생안정을 최우선으로 경제활력을 높이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세제개편도 이런 정책 방향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