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인터뷰 “용기와 다가섬, 지금도 계속”
묻지도 않은 이야기로 시작한 진솔한 인터뷰
“다행스럽게, 감사하게도 ‘수리남’ 반응 좋아”
“윤종빈 감독, 내 진짜 표정 알아서 끝까지 뽑아내”
5번째 감독-배우 호흡 “동료로서 함께 성장…의미 있다”
강인구, ‘아버지의 이름으로’ 초강력 마약왕 잡는 민간인
세인의 호평을 얻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주연배우 하정우는 묻지 않은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지난 13일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진행된 언론 인터뷰에서다.
“피한 것도 아니고 숨은 것도 아니에요. 쏟아지는 소나기에 해명은 변명이 되는 것 같아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그 일을 얘기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기다려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배우 하정우를 떠나서 사람 김성훈으로서 반성의 시간이었습니다. 사건을 겪은 것도 있지만 배우로서 작업해 오면서, 많은 사람과 작업하면서 놓친 것은 무엇이고 상처 줬던 것은 무엇인지 진하게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라 여행 갈 수도 누구를 쉽게 만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걸으면서 돌아보고 깨닫고 성찰하려 노력했습니다.”
“특별히 한 것은 없고 성경 필사를 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으로 깨달음에 다다르려는 노력이지요. 많이는 못 썼고, 여호수아를 쓰고 있습니다. (모태신앙이죠? 네) 코로나19가 지속되는 데다 해외에서 1년을 촬영하면서 온라인예배를 계속 드리다 보니 계속 온라인으로 드리게 되더라고요. (‘수리남’으로) 도미니카에서 2개월, (영화 ‘피랍’으로) 모로코에서 4개월을 보냈는데 다이나믹한 곳은 아니고 한국 사람이 많지 않아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거창한 게 있다기보다는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이 (영화 ‘클로젯’ 이후) 3년 만의 인터뷰인데, 요즘 흔히 온라인 인터뷰한다고 하는데 제가 먼저 대면을 제안했습니다. 만나 뵙고 얘기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로서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고 실망하신 분들께 한발 다가서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용기와 다가섬은) 지금도 계속 중입니다.”
“큰 리스크를 안고 제작을 강행해 주신 윤종빈 감독과 많은 분께 제 입장에서는 고개도 들지 못할 미안함이 있었죠, 지금도 있고요. 작은 작품도 아닌데요. 영화 ‘보스톤’도 대기 중이고, 지난봄 작업한 ‘야행’이 있고, 방금 촬영을 마친 ‘피랍’도 대작이고…피해 드린 것 같아서 어떻게 갚을까 계속 생각 중입니다.”
하정우는 반성부터 했고 반성만 했다. 사건이 보도됐을 때도, 지금도 분명 할 말이 있겠으나 먼 훗날을 기약하며 사과만 했다. 법원이 확정했듯 피부과 치료를 위한 단 9회의 투약이 가져온 큰 파장에 억울함을 일절 입에 올리지 않았고, 배우 하정우가 연기를 하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관객·대중과 조금이라도 멀어졌을까만 저어했다. 혹시 모를 그 거리를 좁히는 노력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관객에게 내게 오시라 한 손짓하는 대신 용기 내어 두 발로 다가가고 있다.
그 첫 번째 발걸음이 작품 ‘수리남’이고 대중은 양손 들어 환영하고 있다. 모이기만 하면 ‘수리남’ 얘기를 하고, 호평 일색이다. 소름 돋는 황정민의 연기, 육중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박해수, 기대 이상의 멋짐과 반전을 안기는 조우진에 대한 칭찬의 소리가 크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하정우의 유연한 연기와 특유의 말맛 넘치는 유머에 ‘역시 하정우!’라고 엄지를 세운다. “이제껏 본 OTT물 가운데 최고”라는 동일한 표현의 극찬을 이틀에 한 번은 듣는다. 시청자의 뜨거운 호응을 하정우 본인은 알고 있을까.
“다행히 반응이 좋더라고요. 제작진 내부적으로 소통한 것은 없어요, 공개하자마자 윤 감독이 한국에 없기도 했고요. 제게도 낯선 환경이에요, 예전엔 개봉하면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서 관객 수 확인했는데, 이번엔 포털 댓글 창 보고 있네요(멋쩍은 웃음). 주변 반응은 다행스럽게, 감사하게도 좋은 말씀들 해주셔서 근근이 보내고 있습니다.”
드라마 ‘수리남’의 시작에는 하정우가 있었다. 본인의 손에 들어온 A4 15페이지 분량의 스크립트,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남의 나라 수리남에서 마약왕이 된 남자와 민간인이면서 국정원을 도와 마약왕 잡기에 나선 한 남자의 이야기를 윤종빈 감독에게 건넸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실화 바탕의,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윤 감독에게 소개했다.
“(윤 감독에게 제안한 이유는) 스스럼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루에 열두 번씩 얘기하는 사이라 건네줬어요. 15페이지짜리 정도의 이야기였는데, 윤 감독은 영화로 만들 수는 없겠다며 거절했고 영화 ‘공작’을 찍었어요. 제가 직접 가지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정도는 아니고 파트너가 누가 있을까, 이야기를 풀어낼 감독이 누구일까 고심했으나 역시나 쉽지 않아서 수년간 표류가 됐어요. 그런데 윤 감독이 ‘공작’을 찍고 나서 시리즈물이면 가능하겠다고 해서 살아난 프로젝트죠.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 ‘정민형이랑 (정우)형이랑 하면, 이런저런 설정을 가미하면 가능하겠다, (드라마로) 볼 만하겠다’ 얘기했고, 저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결국 윤종빈 감독이 마음먹어서 일이 된 겁니다.”
제작 관련 협업을 제외해도 윤종빈과 하정우의 감독-배우 호흡은 다섯 번째다. 윤 감독의 연출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를 시작으로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군도: 민란의 시대’(2014)를 거쳐 2022년 ‘수리남’이다. 같은 학교에서 동문수학했다고 해서 누구나 인연을 이어가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것들을 이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무로 데뷔부터 함께했으니까요. 잘 성장하고 있는 감독이구나! 동료로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해 가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리남’만 해도 이런 이야기에 흥미를 많이 가지고 있고, 실제 사건에도 관심이 있으니 시나리오로 풀어낸 것 같아요. 이야기의 확장성을 생각하며 실화를 넘어서게 구상했을 거예요, 윤 감독이.”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작은 말들에도 배우 하정우의 감독 윤종빈을 향한 존중과 진심이 묻어났다. 보기 좋은 풍경이다. 서로를 잘 아는 두 사람의 작업, 정말 좋기만 할까. 시청자 시선에서는 반가운 이야기, 현장에서의 고충이 인터뷰 현장에 웃음을 자아냈다.
“감독과 배우로서보다 사적 시간을 많이 보내왔으니까 제 말투와 패턴, 속도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알고 있어요. 그러한 대사를 시나리오에, 생활 연기가 나오게끔 지문과 대사에 써 줘서 너무 좋은데. 기본적으로 쉽지 않아요, 윤 감독과의 작업은. 저의 진짜 ‘빡 친’ 표정, 찐 웃음을 아니까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면 ‘어색하다’는 반응이 바로 나와요. “형, 어색한데, 이상한데”. 저는 너무 어려운 거예요. 너무 끝까지 뽑아내려고 해요(웃음), 많이 찍어요.”
실제로 작품을 보면 하정우 특유의 말맛 착착 붙는 대사들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도 가까이 지내는 두 사람, 윤종빈 감독이 하정우의 말의 특색을 대본에 반영해 놓은 결과다. 상상해 보면, 내가 어떤 상황에 지은 표정을 나는 알지 못한다,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의 연기 상황에서 그 표정을 지으라 하면 난감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감독 윤종빈은 그것을 끌어올렸고, 시청자인 우리는 쫄깃쫄깃 고소한 인절미 같은 하정우의 발화에 즐겁다.
아무리 실화라지만, 남미 대륙 북동쪽의 수리남에서 마약왕이 된 조봉행과 그를 잡은 민간인 국정원 언더커버 K씨의 존재가 실화임에도, 보통 사람이 마약왕 소굴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황당하게 다가오기 십상이다. 배우 하정우에게는 K씨의 극중 인물인 강인구와 그의 말과 행동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마약왕 전요환과의 대결이 팽팽해 보여야 하는 책무가 주어졌다. 과연 어떻게 이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시청자가 믿게 하고, 믿는 것을 넘어 쾌감을 느끼게 할 수 있었을까.
“10부작, 16부작이면 강인구의 내면이 나왔을 텐데 6부로 압축되다 보니 이야기 전체의 흐름, 리듬이 중시됐다고 생각해요. 유도만 했다고 첩보원 같은 활약이 믿기는 것도 아니고, 카체이싱만 해도 강인구가 미국영화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도 아니고 전직 형사나 전직 요원도 아닌데 이럴 수 있나 저 또한 궁금증에 부딪혔습니다. 영화적 캐릭터의 허용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극적 허용이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수리남’을 보면 믿긴다. 마동석의 주먹 한 방을 믿듯 강인구의 엎어치기 한 판이면 거구 갈라스(쉬디 아주포 분)도 단번에 매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래 주기를 응원한다. 실제로 단숨에 넘겼을 때, 두 손을 움켜쥐는 ‘그렇지!’ 탄성을 부른다. 배우 하정우가 우리를 설득해 내서다. 어떠한 위기 상황도 요리조리 피하는 ‘임기응변’과 살아남겠다는 인간으로서의 ‘생존본능’, 살아서 내 아내와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겠다는 ‘부성’이 한데 뭉쳐 강인구를 제이슨 본 이상으로 만든다.
“영화 ‘허삼관’ 때보다 ‘수리남’에서 부성 연기를 잘했다고 보신다면, ‘허삼관’ 때보다는 여덟 살을 먹어서가 아닌가(웃음). (아버지라는 자리는)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저는 겉핥기식이죠. 윤종빈 감독이 아빠가 되어 자식을 키우면서 겪은 그러한 디테일이 지문과 대사에 잘 녹아났던 것이 이유라 생각합니다. 철저하게 100% 감독님께 기댔던 부분이에요.”
“이 인물이 살기 위해, 자기 가족을 책임지고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마음을 직접 표현하는 것보다는 일상적 대사에 담겼다고 생각해요. 아내에게 전화해서 ‘나 교도소에서 빼내겠다고 변호사 비용 내겠다고 전세금 빼지마’라고 한다든가, 아들에게 ‘아빠가 너 성적표 봤어, 엄마한테 숙제 검사 제대로 받고’ 하는 식으로요. 이 시리즈물 내내 잔잔하게 쌓이면서 그런 설득력을 이뤄낸 것 같습니다.”
임기응변과 생존본능, 그리고 부성. 하정우는 마약왕 잡는 민간인 강인구에게 현실감을 부여한 공을 윤종빈 감독에게 돌렸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모성이라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우리가 믿듯 감독 윤종빈과 배우 하정우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강인구를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에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를 얹어 영화 ‘테이큰’의 리암 니슨을 능가하는 부성으로 인식시킨다.
윤종빈 감독은 1화를 통해 강인구의 특별한 인간적 특성과 전사를 충분히 설명한다. 그리고 2화부터 쉴 틈 없이 달린다. 6부작이 끝날 때까지 시청을 멈출 수 없게, 아주 절묘한 지점에서 이야기를 끝내 다음 화를 클릭하게 한다. 오랜만에 짜릿한 재미, 리듬감 있는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을 선물한다. 글을 쓰다 보니 다시 봐야겠다. N차 관람, 보고 또 봐도 흥미진진한 ‘수리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