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식품값 줄인상에 경고장
“공정위·농식품부 합동점검할 것”
식품업계 “기업 팔만 비트나” 비판
"하반기, 원가부담 못견뎌 인상 이어질 것"
최근 정부가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을 모니터링 하겠다고 밝히면서 식품업계 반발이 만만치 않다. 기업들의 가격 인상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가 부담을 견디지 못해 이뤄진 것인데, 마치 기업들이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처럼 언급했다는 이유가 크다.
특히 이미 인상을 단행한 곳도 많지만, 손해를 감내하며 인상 시기를 저울질 하던 기업들로서는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다. 근본적인 대책이 결여된 상황에서 기업 ‘팔 비틀기’에 불과한 조치라는 점에서 원성이 높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부처 고위 인사들은 최근 식품업체의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거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관세 인하 등으로 가격 인하 요인이 생겼는데, 식품업계가 오히려 제품 가격을 올리는 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추 부총리는 지난 19일 식품업계의 ‘가격인상 동향 일일 모니터링’, ‘식품업계와 가격안정을 위한 협의’, ‘공정거래위원회 점검’ 등 구체적 계획까지 거론했다. 식품업계가 최근 물가 상승 심리에 편승해 제품 가격을 과도하게 올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식품업체들은추 부총리의 발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칫 기업들이 이유없이 가격을 올려 부당이익을 취하는 것처럼 비춰질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0여 년 전 이명박 정부가 물가에 지나치게 개입한 것과 비슷한 양상이란 비판도 뒤를 잇는다.
최근 식품업계는 식품 소비자 가격을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추석 연휴 이후 CJ제일제당, 농심 등 주요 식품기업들은 김치, 라면, 스낵류 등의 가격을 잇따라 올렸다. 닭가슴살 등 육가공 제품은 물론 가정간편식 등까지 줄줄이 오르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기업들도 소비자 가격을 올려 엄청난 이익을 거두는 것 같지만 다같이 어려운 시기 일부러 가격을 올릴 이유는 없다”며 “기업도 버티다 못 해 최소한으로 일부 제품에 한해 올리는 것이다. 아직 가격을 조정하지 못한 제품이 훨씬 더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가격 인상 폭 역시 100만큼 올려야 한다면 20정도로 최소 조정을 한 것이라 기업이 감내해야 할 부담이 정말 크다”며 “부당이익을 취하기 위한 목적이나 담합과는 거리가 멀다”고 선을 그었다.
오리온은 지난 2013년 이후 9년 만에 가격을 올렸다. 초코파이와 포카칩을 비롯한 16개 주요 제품 가격을 평균 15.8% 인상했다. 오리온은 지난해부터 유지류와 당류, 감자류 등 주요 원재료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가 압박이 가중돼 불가피하게 조정했다.
◇ 인상시기 놓친 기업 ‘역차별’ 설도…“하반기도 가격인상 불가피”
일각에서는 최대한 가격 인상을 늦추며 고통을 분담한 기업들이 가격 인상 시기를 놓쳐 오히려 역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격인상을 미룬 기업은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기업은 삼양식품이다. 라면업계가 지난해에 이어 최근 2차 가격인상을 단행했지만 삼양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삼양식품은 내수부문에서 이익이 나지 않지만 70%의 해외매출 비중과 환율급등에 따른 수혜로 가격인상을 유보해왔다.
제과업계에선 크라운제과가 아직까지 가격을 안 올렸다. 오리온, 농심, 롯데제과, 해태제과가 스낵가격 등을 일부 인상했지만 크라운제과는 "원가부담을 최대한 감내하겠다"며 동참하지 않았다.
주류업계에선 롯데칠성음료가 맥주 브랜드 클라우드의 가격을 동결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맥주가 지난 4월 이후 맥주 가격을 7.7% 인상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롯데칠성음료는 클라우드의 시장 점유율이 3.8%까지 낮아지자 인상된 세금을 감내하면서 가격에 손을 대지 않았다.
김치시장에선 풀무원이 가격을 그대로 뒀다. CJ제일제당 비비고는 지난 15일 가격을 인상했고 대상 종가집은 다음달부터 올린다. 두 브랜드 모두 지난 2,3월 각각 김치 가격 인상을 올렸는데 올해만 두 번째 가격 조정을 했지만 풀무원은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들지 않았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원가상승요인이 많아 이들 기업의 가격인상은 시간문제라고 바라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 내 담합 같은 건 없고 원재료와 인건비, 물류비, 임대료, 전기료 등이 모두 올라 가격을 안 올리면 적자가 될 만한 제품의 가격을 올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압박에도 하반기 식품 가격 인상은 지속 이어질 전망이다. 원유가 조정에 따른 제품 가격 인상이 예고돼 있어서다. 정확한 인상폭은 아직 미정이지만, 업계서는 500원 안팎이 유력하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내달 초 확정될 예정이다.
유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 했지만 원가가 오르는데 제품 값을 안 올릴 수는 없다. 추후 업계 상황을 반영해 가격을 결정할 예정”이라며 “다른 식품 업체들도 모두가 주목하는 상황에서 가격 조정에 따른 부담은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품업계는 정부도 쓸 카드가 없는 상황인 만큼 기업을 압박한다고 해도 효과는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기업들이 감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에서 가격을 조정했으나 아직도 원료가격 인상 압박이 크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지난 5월 정부가 물가 대책의 일환으로 밀가루 등 7종에 연말까지 0% 할당관세를 적용하기로 했지만 이미 무관세인 경우가 많아 가격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며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라고 일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