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독립 시험대
엇박자 논란 확산
오는 24일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통화・재정정책의 엇박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은이 ‘물가 안정’에 최우선을 두는 통화정책을 강조하며 금리인상을 예고하는 가운데, 맞은편에서는 레고랜드발(發) 자금시장 경색을 우려해 긴급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5대 금융지주를 통해 자금시장 경색을 해결하기 위해 연말까지 95조원 규모의 자금을 시중에 풀기로 했다. 앞서 한은도 시장의 요구에 부응해 한시적으로 6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을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금리로 돈줄을 옥죄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돈을 푸는 상황이 연출되는 모양새다.
정치권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금융위가 ‘열석발언권’을 행사해 한은의 금리인상 속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열석발언권은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의 고위급 관계자가 금통위에 참석해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2013년 한은 독립성 차원 보장에서 해당 제도는 실행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이창용 총재는 국회 질의 과정에서 나온 해프닝으로 치부했지만,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답변은 미묘하다. 그는 “그런 생각을 많은 분이 하는 것으로 안다”며 “감안해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금융위에서는 “원론적 답변”이라며 김 위원장과 이 총재가 소통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해명했으나 찝집함은 남아 있다. 현 금융위의 행보는 기재부의 재정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엇박 논란의 이면에는 현 정부의 ‘천재 관료(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와 전 정부가 말뚝 박아놓은 ‘경제 천재(이 총재)’와의 대립구도가 자리한 것으로 해석된다.
레고랜드 사태로 불편한 구도가 부각됐을 뿐, 두 천재의 대립은 태생적으로 예견된 갈등일지도 모른다. 껄끄러운 동거에서 나오는 불협 화음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당장 시장의 이목은 오는 3일 열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로 향하고 있다. FOMC에서는 4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p) 인상)’이 유력하다. 이렇게 되면 한미 금리 격차는 1%p로 확대된다. 역대 최대폭인 1.5%p에 근접한다.
금리 격차와 고물가・환율을 고려하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0.5%p 올리는 ‘빅스텝’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자금경색 우려와 이자 부담이 발목을 잡는다.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한은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다.
재정정책은 통화정책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하지만 간단치가 않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이 총재가 내세웠던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예고 지침)’는 사실상 실패했다. ‘물가 급등’과 ‘돈맥경화’ 사이 한은의 독립성 마저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