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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파산 현실로②] '금융의 탐욕' 재조명…보너스부터 챙긴 행원들


입력 2023.03.15 06:00 수정 2023.03.15 06:00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SVB 직원들 거액 성과급 '눈총'

미리 지분 정리한 CEO도 '논란'

국내 당국 정책 개선 명분 될 듯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 동안 뇌리에서 사라졌던 은행 파산이란 단어가 다시 현실로 등장했다. 미국에서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폐쇄가 불거질 수 있다는 후문이 시장에 퍼진 지 불과 이틀 만에 소문은 사실이 됐다. 아직 지구 반대편에서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떠올리기 싫은 10여년 전 그 날의 위기도 이렇게 다가왔다. 금융시장이 맞닥뜨린 위기의 현주소과 아픔의 재현을 막기 위한 역사의 교훈을 되짚어 본다.<편집자주>


자산 증가 이미지.ⓒ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 결정 직전 직원들에게 거액의 보너스 지급을 결정하고,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회사 지분을 미리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당시 미국의 주요 은행들이 도리어 성과급 잔치를 벌이며 싸늘한 여론에 직면했던 과거가 재현되는 분위기다.


국내에서도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과도한 성과급을 문제 삼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금융의 탐욕이 다시금 조명을 받는 분위기다.


15일 미국의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SVB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의 폐쇄 결정이 내려지기 불과 몇 시간 전 직원들에게 지난해 한 해 동안의 업무에 대한 연간 보너스를 지급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날이 SVB의 보너스 지급 예정일이었다는 것이다.


SVB가 이번에 지급한 성과급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정확치 않다. 다만 미국 경제매체 CNBC는 SVB의 보너스는 사원부터 임원까지 1만2000달러에서 14만 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우리 돈으로 약 1590만원에서 1억8500만원 수준이다. 특히 2018년 SVB는 현지 상장된 은행 중 가장 높은 봉급을 주는 회사로 꼽히기도 했다. 그해 평균 봉급은 25만 달러(약 3억3000만원)에 달했다.


그레그 베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최고경영자. ⓒ로이터=연합뉴스

SVB가 문을 닫기 전 자신이 갖고 있던 회사 주실을 팔아 치운 CEO의 행보도 논란거리다. 그레그 베커 SVB 회장은 지난 달 27일 모회사인 SVB파이낸셜의 지분 1만2451주(약 360만 달러·47억6000만원)를 매각한 사실이 알려졌다. 베커 회장이 지분 매도 계획을 금융당국에 보고한 지난 1월 26일 당시 SVB의 자본 조달 계획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내부자 거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은행권의 이 같은 행태를 둘러싸고 기시감이 그는 건 당연하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던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미국의 주요 은행들은 예년 수준을 넘어 더 많은 성과급을 지급한 전력이 있다. 실제로 금융위기 태풍의 중심을 지나고 있던 2008년 10월, 미국 9대 은행들이 전년 대비 3% 늘어난 약 1080억 달러의 임금 총액을 해당 연도에 책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당시 이를 두고 엄청난 금융위기를 불러온 금융사들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 검찰총장은 "시민들은 평생 저축한 것을 날려버린데 이어, 이제 금융기관의 구제 금융에 필요한 돈까지 낼 것을 요구받고 있다"며 "금융기관들이 계속 막대한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것은 고통 받는 시민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위기에 빠진 은행원들의 보너스를 둘러싸고 미국에서 재현되고 있는 갑론을박은 당장 국내 정책에도 영향을 줄 소지가 있다. 마침 우리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성과급 체계에 메스를 들이 대겠다고 예고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고금리로 인해 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와중 역대급 실적을 거둔 은행권이 직원들에게 대규모 보너스를 지급하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성과급 체계를 점검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은행권 성과급 시스템 개편을 아젠다로 띄운 금융당국 입장에서 최근 미국의 SVB 사태 와중 불거진 성과급과 CEO 행보에 대한 논란은 새로운 명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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