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 시작도 안했는데 '파업'…이게 바로 노란봉투법 [기자수첩-산업IT]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3.05.24 10:09  수정 2023.06.14 16:26

기아 노조, 쟁의권도 없이 31일 금속노조 총파업 참여 선언

노란봉투법 통과시 노동쟁의 개념 확대…1년 365일 파업 가능

정치파업에 민간기업 공장 멈추는 게 정상인가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이 2022년 7월 20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오는 31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기아 노조)는 이에 호응해 31일 주‧야 4시간씩 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현행법상 노조가 합법적으로 파업을 하려면 몇 단계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측과 교섭, 즉 근로조건의 결정 과정에서의 분쟁이 발생하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하고, 중노위로부터 조정 중지 결정이 떨어져야 쟁의권을 확보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조합원 총회(찬반투표)를 통해 쟁의행위를 가결 받는 절차도 필요하다.


금속노조 산하 사업장 중 쟁의권을 확보한 곳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심지어 사측과 교섭 개시를 위한 상견례도 시작하기 전인 곳이 대부분이다. 금속노조의 파업 지침을 따르겠다고 선언한 기아 노조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총파업 예고 시점이 일주일 앞인데, 그 사이 쟁의권 확보를 위한 절차를 밟는 것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측과 몇 차례 만나 교섭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중노위에서 쟁의조정 신청을 받아준다.


즉, 쟁의권 없이 불법적으로 공장을 멈추지 않는 이상 31일 금속노조 총파업에 전 조합원을 동원할 수 있는 사업장은 없다. 기껏해야 노조 전임자들과 대의원들, 연차휴가를 낸 일부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선에 그칠 수밖에 없다.


내년쯤엔 이런 상황이 바뀔 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 입법에 목을 매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를 장악하고 있는 야당은 24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의 본회의 직회부 의결을 시도할 예정이다.


노란봉투법에는 노동쟁의 개념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분쟁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미 임금‧단체협약(임단협)에서 확정된 내용에 대해서도 해석과 실현에 관해 분쟁이 생길 경우 쟁의에 나설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어떤 사안이건 ‘해석’의 범위는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 노조가 파업을 하고 싶다면 언제든 근로조건의 해석을 놓고 시비를 걸어 쟁의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용자측이 노란봉투법 통과시 산업현장이 1년 내내 노사분규에 휩쓸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같은 거대노조나 금속노조와 같은 산별 노조가 ‘정권퇴진’ 등을 요구하는 정치파업을 할 때도 산하 사업장 노조가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을 명분으로 쟁의권을 확보한 뒤 참여할 수 있다.


이번 금속노조 총파업도 ‘윤석열 폭정 맞선 금속노조 총파업대회’를 기치로 내걸었다. 민주노총이 예고한 7월 총파업도 마찬가지로 정치색을 띤 파업이다.


노란봉투법이 현실화되면 정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민간 기업이 정치파업에 휘말려 공장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물론 민주노총과 정치적 운명공동체인 것으로 보이는 일부 정치인들에게는 그런 상황이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겠다. 산업 현장이 멈추고 경제가 붕괴된들,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벤트가 수시로 열릴 수 있게 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노란봉투법이 본회의에 직회부되면 소수 의석의 여당으로서는 저지가 불가능하다. 1년 365일 상시파업의 난장판을 막을 방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밖에 없다. 산업현장에 집중돼야 할 기업들의 시선이 여의도로 몰려 있는 비정상적 상황이 하루 빨리 해소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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