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주권·바이오 강국, 다 ‘빈 말’이었나 [기자수첩-산업IT]

김성아 기자 (bada62sa@dailian.co.kr)

입력 2023.09.15 07:00  수정 2023.09.15 07:00

바이오 강국 외치던 정부, 반년 만에 ‘변심’

내년도 R&D 예산 삭감…연구 중단 위기도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아시겠지만 예산이 많이 삭감돼서요, 그래도 과학자들이 열심히 해봅시다”


최근 취재차 참석한 바이오 관련 포럼에서 한 좌장이 콘퍼런스를 마무리하며 청중들을 향해 말했다. 청중들은 쓴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냈다. 마치 그들 자신에게 하는 격려처럼.


3년간의 팬데믹에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정부 지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업계 특성상 활발한 민간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기에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을 일례로 들어보자. 후보물질 발굴부터 단계별 임상, 허가까지 신약 개발에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적응증에 알맞은 후보물질을 발견해서 임상에 진입한다고 해도 전체 성공률은 10% 안팎이다. 그야말로 ‘극악’의 확률게임인 셈이다.


이에 당연히 업계 종사자가 아닌 투자자 입장에서는 회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게 되고, 경제가 어려워지고 투자 환경이 위축될수록 제약바이오 업계 투자 유치율은 떨어지게 된다. 실제로 엔데믹 이후 금리 인상 등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세계 최대 바이오 강국인 미국에서도 지난해 바이오 업계 투자 환경이 전년 대비 23% 정도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세계는 지난 팬데믹을 통해 제약바이오 산업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했다. 백신 등 필수의약품 부문에서 자국민 우선주의가 심화되면서 기술 및 생산의 국산화가 이뤄지지 않은 국가들은 보건 안보의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팬데믹 당시 백신과 치료제 확보를 위해 막대한 규모의 예산과 외교력을 투입해야 했다.


이에 미국, 일본 등은 엔데믹 이후 정부 차원에서 수조원의 자금을 투입해 제약바이오 산업을 키워내고 있는 추세다. 미국은 넥스트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 6조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결정했으며 일본은 향후 신속한 백신 개발을 위한 mRNA 플랫폼 개발을 위해 1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고 실제로 성과를 얻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는 듯 했지만 실체는 ‘없는’ 수준이다. 정부는 백신 주권, 바이오 강국 등 관련 이니셔티브를 계속해서 주장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전혀 정부의 의지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백신펀드 조성, 수백억원대 투자 계획은 수차례 발표됐으나 실제 집행된 금액은 10%도 안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마저도 줄어들 판이다. 2024년 R&D 예산 비효율 조정 예시에 따르면 내년도 백신 관련 예산은 올해 대비 5분의 1로 줄었다. 세부 사업간 유사중복 가능성으로 사업을 통폐합하고 각 사업마다 할당된 예산을 삭감한 것이다. 백신뿐만 아니라 전체 R&D 예산 역시 규모가 줄어들면서 정부 과제로 신약 개발을 이어가고 있던 중소 기업들은 연구 중단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팬데믹의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4년 내 코로나19에 버금가는 팬데믹이 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기도 하다.


로마의 호라티우스는 “현명한 자라면 평화로울 때 전쟁을 대비한다”라고 했다. 한 번의 전쟁을 겪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이 다음 전쟁을 철저히 대비할 때 평화에 안주해 또다시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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