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유령선’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3.10.12 05:05  수정 2023.10.12 14:22

인공지능이 원격 통제하는

무인선박들의 자율운항 임박

이상징후 탐지와 고장 예측

돌발상황 대처까지 완성단계

자율운항 선박과 원격운항 통제센터.ⓒ 롤스로이스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3년 10월의 어느 멋진 날.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인도양 한복판에 거대한 화물선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질주한다. 시속 25노트의 쾌속으로 운항 중인 이 선박은 암스테르담 항을 출발해 지중해를 거쳐 수에즈 운하를 빠져나온 뒤 첫 기착지 싱가포르로 향하는 중이다. 이후 상하이를 거쳐 돌아갈 최종목적지는 부산 항이다.


외관상으로는 바다에서 흔히 마주칠만한 대형 컨테이너선이지만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이 큰 배에 인기척이 전혀 없다, 배가 클수록 선원도 많아질 테니 갑판 위에서 항로나 선박상태를 살피고 있어야 마땅한데 그림자도 안 보인다. 사람 없이 움직이는 배라면 전문용어로 ‘유령선’이다. 혹시 최신판 ‘캐리비안의 해적’ 영화라도 찍는 걸까.


물론 그럴 리는 없다. 이 배는 수 천km 떨어진 한국에서 원격제어하는 무인선이다. 자동차 자율주행시스템보다 훨씬 복잡하고 고도화된 최첨단 인공지능(AI) 시스템이 선박 운항을 통제하고 있다. 배는 조용하지만 멀리서 조종하는 손길은 무척 분주하다. 집에서 TV 리모컨을 쥔 손이 항상 바쁜 것처럼.


이 유령선을 움직이고 있는 원격운항 관제센터 모습을 들여다보자. 이 선박을 담당하는 김한화 책임은 커피를 한잔 들고 스마트 스크린 앞에 앉아 운항 상태에 관한 여러 데이터를 살피고 있다. AI 오퍼레이터가 이상현상을 탐지해 김 책임에게 보고한다. “선박코드 HW-2033. 인도양 운항 중 통신기능에 일부 장애가 발견됐습니다.”


긴장한 김 책임은 홀로그램으로 입체 선박 모형을 띄워놓고 통신기기 위치를 살핀 후 AI에게 지시한다. “선박 후미의 안테나 상태를 직접 봐야겠어. 검사용 드론 1, 2호기 띄워 줘.”


AI는 선박에 비치된 드론 두 대를 가동한 뒤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 영상을 대형스크린에 올린다. 드론이 안테나를 360도 회전하며 영상을 비추자 지난 밤 파고 4m의 러프 해역을 통과할 때 손상을 입은 듯한 흔적이 보인다. 김책임은 화면을 통해 문제를 파악한 후 AI에게 지시한다. “수리팀에게 영상을 보내주고 다음 기착항에서 안테나를 교체하도록 요청해줘.”


김한화 책임 옆에선 동력시스템 전문가인 박오션 책임이 선박의 모터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AI로부터 불안정한 소음이 발생한다는 보고를 받고 최근 3시간 동안의 음향상황을 그래프로 나타낸 자료를 스크린에 올려놓는다. 모터 소리의 이상 구간을 확인한 박 책임은 다른 동료를 불러 정보를 공유하며 부품을 교체해야 할지를 논의한다.


2016년 공개된 롤스로이스 미래해양통제센터 개념 영상을 토대로 한국식으로 재구성해본 선박 자율운항 체계의 가상도다. 과거엔 꿈같은 얘기였지만 지금은 거의 현실로 다가온 비전이다. 단순히 무인선박을 원하는 지점으로 이동하거나 전방 장애물을 탐지해 충돌회피를 하는 수준의 기술은 이미 넘어섰다. 선박이 항만에 진입할 때 자동차 자율 주차처럼 날렵하게 붙여대는 이 접안 기술도 완성단계다. 더 나아가 한화오션 중앙연구원 원격운항센터(ROC)에서는 먼바다에 나가 있는 여러 선박들 현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작업도 수년째 시행해오고 있다. 현재 배의 위치는 어디인지, 최적 항로를 최적 속도로 가고 있는지, 날씨와 파고는 어떻고, 연료는 얼마나 소모하고 있는지 등등 온갖 데이터들이 모니터에 기록되고 있다.


이런 빅 데이터 축적은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수순이다. 자동차 수만~수십만 대 중량의 초대형 무인선박이 거친 바다를 혼자 돌아다니려면 현재가 아니라 미래 돌발 사태를 예측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핵심 요건이다. 대형 선박은 조금만 방향이 틀어져도 운항거리가 크게 달라지고 속도 변화와 해류, 파도의 저항에 따라 연료 소모량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자칫하면 관리자의 봉급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사흘 후 지나게 될 항로에 기상악화가 예상된다면 우회할 것인지, 혹은 뛰어난 운전 솜씨를 발휘해 정면 돌파할 것인지를 미리 잘 판단해야 한다. 또 항구에서 하역작업이 지연돼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상황이라면 굳이 연료를 낭비하며 빠른 속도를 내기보다 항만 측과 협의해 도착시간을 조정하는 게 현명한 대응일 것이다.


이런 외부변수만 해도 상당히 골 아픈데, 더 중요한 건 선박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먼바다에 있는 선박 상태를 사람이 24시간 관리하는 건 물리적으로 어렵다. 총명하고 부지런한 AI가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완전 자율운항의 문을 열 마지막 열쇠는 AI가 관리하는 상태기반유지보수(CBM) 기술이다. 항해과정은 물론 선박기능에 대한 상시 이상탐지와 고장진단 및 예측까지 가능한 차세대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이 구축되면 국제해사기구(IMO)가 공인하는 4단계 완전자율운항, 즉 ‘첨단유령선의 시대’가 활짝 열린다. 표준화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간, 기업간의 물밑 경쟁은 이 시각에도 치열하다.


요컨대 신(新)해양시대의 첫 키워드는 ‘무인화’다. 이제 콧수염과 구레나룻을 기른 마도로스가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바다를 응시하는 낭만적 장면은 더 이상 없다. 배를 타려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안전문제나 비용측면에서도 무인선박이 훨씬 유리하다. 앞으론 해적들의 사업모델도 달라질 것이다. 기관총을 든 소말리아 해적들은 인질 협상 비즈니스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푸념하는 반면 해킹 능력을 갖춘 사이버 해적들은 새로운 블루오션이 열린다고 흥분할지 모른다.


아무튼 거스를 수 없는 무인화 추세 속에 사람 몸은 한층 편리해지겠지만 그 대신 머리는 몇 배 복잡해질 것이다. 첨단기술은 과연 이기(利器)일까, 두통일까? 10년 후에도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분명한 건 우리가 외면한다고 대세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앞서갈 것인지, 뒤따라갈 것인지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글/ 이동주 한화오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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