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 보장으로 속여 vs 판매절차 엄격
금융당국 조사…과거 투자 이력 관건
투자 손실 이미지. ⓒ연합뉴스
항생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폭락으로 관련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서 내년 상반기에만 3~4조원대 손실이 예상된다. 대규모 투자 피해 우려에 금융당국은 판매사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착수, 불완전판매 여부를 따지는 중이다.
금융사는 대규모 손실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라임·파생결합펀드(DLF) 등 과거 사모펀드 사태 때와는 불완전판매 여부 측면에서 결이 분명 다르다는 입장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중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잔액은 8조원대 규모다. 미래에셋·NH투자·KB·삼성증권 등 4대 증권사의 경우 2조4000억원 규모다.
이날 기준 홍콩H지수는 6000포인트에도 못 미치지만, 내년 상반기 만기 상품은 지금보다 주가지수가 30% 이상 올라야 대규모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다. 해당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렸던 2021년 H지수는 1만~1만2000포인트 수준이었다.
◆ "예금보다 높은 금리" 공격적 판매 후폭풍
국내 은행 증권사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은 '사모펀드 사태'와 달리 부실상품이 아니다. 자금구조가 불투명한 사모펀드와 달리 세계 주요 지수 중 하나로 꼽히는 홍콩H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다.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이 가장 많이 팔린 시기는 2021년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 따라 기준금리가 0.5%를 기록했던 시기다. 당시 정기예금 이자는 1% 수준으로 은행에서는 3~4% 수익률이 나올 수 있는 홍콩H지수 ELS 상품을 권유했던 것이다. 중국 증시도 강세를 띄면서 추가 상승이 예상되는 시기였다.
판매사가 떼가는 상품 수수료도 1% 내외로 높다보니 5대 은행의 홍콩H지수 ELS 판매 규모만 14조원에 육박했다. 가장 많이 판매한 곳은 KB국민은행으로 8조원 가량 판매했으며, 이 중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액만 4조7726억원이다.
핵심은 금융사들이 관련 상품을 팔면서 가입자들에게 원금 손실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렸는지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소비자연맹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 관련 민원이 속출하고 있다. 대부분 은행이나 증권사로부터 위험한 투자라는 설명을 충분히 듣지 못하고 거액을 투자했다는 내용이다.
특정 은행에서는 예금주를 대리자를 상품에 가입시킨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사실로 판명되면 계약 자체를 취소할 수 있으며, 실명제 위반 등 불완전판매보다 강도 높은 징계가 예상된다.
불완전판매 규제 강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6개월간의 계도 기간을 끝내고 2021년 9월 전면 시행된 가운데, 서울의 한 은행에 금소법 시행 소책자가 놓여있다. ⓒ 연합뉴스
◆ "외양간 고쳐" 은행, 내부통제 고삐
금융권은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낮다고 반박하고 있다. 2021년 1월 사모펀드 및 DLF 사태로 금융소비자 보호 절차가 엄격해졌다는 이유에서다. 조직적인 내부통제 부족까지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은행은 ELS 판매시 ▲녹취 ▲설명 의무 범위 확대 ▲확인 절차 추가 등 강화된 판매 의무를 이행중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투자 권유시 지켜야 하는 6가지 의무는 ▲설명의무 ▲적합성 ▲적정성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이 있다. 하나라도 위반하면 불완전판매에 해당된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설명의무’다.
시중은행들은 법규에 따라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ELS 판매 과정을 녹취하고 있다. 특히 고령투자자는 투자성향분석 단계부터 전체 과정을 녹취하며 원금손실 가능성, 투자 위험, 보수수수료 등을 이해했는지 추가 확인을 하고 있다. 대략 40분~1시간이 소요된다는 설명이다.
자체 '인공지능(AI) 금융상담시스템'을 구축해 AI가 표준스크립트에 따라 상품 녹취 내용을 분석해 불완전판매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ELS 가입 후에도 모든 고객에게 2영업일 이후 최종 가입의사를 재확인하며, 이후에도 7일간 청약철회 기간을 두고 있다. 아울러 모든 가입자를 대상으로 은행 본점이 모든 ELS 상품 가입자에게 해피콜을 실시해 상품 가입 의사, 판매직원 설명 등 불완전판매 요소를 점검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ELS 가입자 대다수가 디지털 서식으로 가입해 확인 누락 등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서도 "은행은 완전판매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우리가 100% 설명을 드렸다 해도 고객이 99%만 이해하면 나머지 1%에서 불완전판매 소지는 있다"고 말했다.
DLF(파생결합펀드)피해자대책위원회, 금융정의연대 등 회원들이 2019년 12월 9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DLF 사태 관련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재개최 요구 청와대 진정서 전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높은 재가입률, 배상비율 낮을 듯
금융사의 홍콩H지수 ELS에 대한 불완전판매가 명확하다면 투자자들은 원금을 일부 돌려받을 수 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는 금융사의 불완전판매가 확인되면 최대 80%까지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라임·옵티머스·헤리티지 등 3개 펀드의 경우 투자자에 주요 사항을 고지하지 않았다며 원금 전액 반환을 권고한 적도 있다.
그러나 소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사모펀드와 달리 관련 ELS는 보편화된 공모상품이라는 점, 특히 재가입률이 높아 배상에 제한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ELS 상품의 경우 만기 이후 또다시 ELS에 투자하는 가입자가 70~80%로 추정된다. 많게는 ESL 상품에 6~7번 가입하는 패턴을 보인다는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정 은행은 재투자율이 90%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투자자의 경우 투자 위험성을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 2013~2014년 사이 증권사들이 판매한 원유 파생결합증권(DLS)이 대표 사례다. 투자자들은 판매 직원들의 유도로 안전한 상품인 줄 알고 가입했지만,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서며 원금의 70% 이상을 날렸다며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원고 상당수가 파생상품 투자 경험이 풍부해 투자 위험을 알고 있다고 판단해 대부분 패소했다.
금융당국도 이같은 투자 이력 등을 고려해 피해자를 가려낼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홍콩H지수 ELS 상품의 손해가 확정되지 않은 만큼, 아직은 불완전판매 여부를 따질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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