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회차를 통해 성군 현종의 모습 더욱 완성도 있게 그려나가겠다.”
오랜만에 돌아온 대하 사극인 '고려 거란 전쟁'에 반가움이 쏟아지던 것도 잠시, 최근 회차에서 현종(김동준 분)의 행보가 실제 역사와 다르다며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고려의 숨은 영웅 양규(지승현 분)를 조명했다며 호평을 받았던 ‘고려 거란 전쟁’이 현종의 묘사를 둘러싸고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KBS2 대하 사극 ‘고려 거란 전쟁’의 18회가 끝난 이후 “전개가 산으로 가고 있다”, “현종의 성격이 이상하게 변했다”라며 불만이 이어졌다. 18회에서 현종은 지방관을 선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강감찬(최수종 분)이 이를 따르지 않자 그를 한림학사승지직에서 파직했다. 더불어 강감찬이 현종 지시로 군현제를 정비하던 형부시랑 김은부 탄핵을 상소하자 화를 참지 못하고 강감찬의 목을 조르려고 했다. 이후 현종이 분노하며 말을 몰던 중 낙마하는 장면까지 등장했는데, 이에 “현종이 금쪽이가 된 것 같다”는 강도 높은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원작 소설을 쓴 길승수 작가가 블로그를 통해 불만을 표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길 작가는 해당 낙마 장면은 원작 소설에는 없는 장면이라고 설명하면서 댓글을 통해 “한국 역사상 가장 명군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자문을 받고 극본을 써야 하는데, 극본 작가가 일부러 원작을 피해 자기 작품을 쓰려고 하는 것이 보인다. 원작을 피하려다 보니 역사까지 피해서 쓰고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고려 거란 전쟁’이 대하 사극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댓글에서 “개인적인 생각은, 원작은 무시해도 되는데 대하 사극인 만큼 역사는 무시하지 않으면 하는데, 그 점이 아쉽다”고 말했으며,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퓨전이 아닌 대하 사극은 시청자들이 역사로 인식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반박도 나왔다. 대하 사극 또한 “드라마”라는 것이다. ‘고려 거란 전쟁’에 출연 중인 배우 김혁은 자신의 SNS를 통해 “너무나 답답해서 저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드라마’”라며 “역사적인 고증을 토대로 만든 100% 역사 고증 프로그램이 아니라 고증을 토대로 재창조해서 드라마로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봐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의견을 남겼다. 드라마를 쓴 이정우 작가도 기본적인 자문은 받았다고 설명하면서 “이 드라마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끌어가는지는 드라마 작가의 몫”이라고 언급했다.
사극의 ‘역사 왜곡 논란’은 꾸준히 불거지는 문제다. 앞서 ‘조선구마사’는 중국풍 의복이나 소품을 쓰고, 태종 이방원을 살인마로 묘사하는 등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난과 함께 방송 2회 만에 폐지됐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퓨전 사극이었지만,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실까지 상상력으로 왜곡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 외에도 철종을 비롯해 철인왕후, 신정왕후, 순원왕후 등 실존 인물들을 희화화했다는 비난을 받은 ‘철인왕후’ 등 실제 역사를 바탕에 두고 허구의 내용을 가미한 퓨전 사극들도 ‘왜곡’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었다.
이 가운데, 퓨전이 아닌 대하 사극을 향한 시청자들의 신뢰와 기대가 높았던 만큼 ‘고려 거란 전쟁’에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이 된 셈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은 사극, 특히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대하 사극의 제작 위축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이어진다. 제작비가 많이 들지만, 젊은 층의 관심을 끌기 힘든 대하 사극은 늘 기피 장르로 꼽혔었다. 여기에 최근 역사 왜곡 문제를 향한 시청자들의 더욱 높아진 기준까지. 공들여 만들지만, 그럼에도 호평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가운데, ‘고려 거란 전쟁’이 최근 회차에서 양규 장군의 활약을 디테일하면서도, 동시에 스펙터클 하게 구현해 내면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한 것도 사실이다. 이를 바탕으로 고려의 숨은 영웅을 알리는 역할까지 하는 등 대하 사극의 순기능을 보여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사극’이라는 장르 특성상, 선을 넘는 왜곡에 대해서는 비판이 이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극적 흥미를 위한 장치가 어떤 메시지로 이어질지는 지켜볼 필요도 있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고려 거란 전쟁’의 제작진은 이번 논란에 대해 “이 모두가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라는 점 역시 제작진은 깊이 새기고 있다”며 “‘고려 거란 전쟁’은 남은 회차를 통해 고난에 굴하지 않고 나라를 개혁하여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동북아에 평화의 시대를 구현한 성군 현종의 모습을 더욱 완성도 있게 그려나가겠다”며 프로그램을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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