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참패는 '스불재'일 뿐
원대 선거 1차에서 끝낸 송언석
당 무게 중심은 여전히 '친윤계'
'근원' 깨달아야 회생 여지 생길 것
'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뜻의 신조어다. 누군가에게 강요받은 것도, 외부 요인으로 닥친 재난도 아니다. 자신의 판단, 자신의 선택,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이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온 결과일 때, 요즘 우리는 이 짧은 말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곤 한다. 그리고 지금의 국민의힘에 이보다 더 적확하게 들어맞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사법리스크' 꼬리표를 달고 있던 위태위태한 야당 지도자 이재명 대통령에게 안정적 대선 후보의 위치, 나아가 역대 최대 득표 수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만들어 준 공은 결코 더불어민주당만의 것은 아니다.
"'이재명'만은 안된다"고 수없이 외쳐 댔음에도 역설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대선 결과가 나오기까지 국민의힘의 역할이 지대했다. 패배의 책임을 외부에, 혹은 서로에게 돌려 댔지만 남 탓 할 일이 아니다. 이번 대선 참패는 그야말로 '스불재'였다.
국민의힘은 12·3 비상계엄 발령으로 탄핵 당해 대선을 촉발 시킨 윤석열 전 대통령과 결별할 용기도, 그의 과오를 인정하고 정정당당히 사과할 담력도 없었다. 심지어 대선 직후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반성과 쇄신으로 나아갈 결기조차 보이지 못했다.
국민이 내리친 '민심의 회초리' 맛을 보고도 제대로 정신을 못 차렸다. 고개를 숙이며 '분골쇄신'을 읊조리긴 했으나, 그것이 말 뿐이었다는 건 이번 원내대표 선거 결과가 여실히 증명해줬다. 국회 안팎에서는 '역시 이 당은 변하지 않는다'는 체념 섞인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다.
송언석 의원은 60표를 얻어 결선 투표 없이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경쟁자 김성원 의원의 표는 30표에 그치면서, 계파의 역학관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여전히 당의 주류는 '친윤(친윤석열)계'임을, 그리고 이 친윤계가 당의 주도권을 절대 놓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 결과였다.
송 원내대표가 자신은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그를 원내대표로 만든 이들 대부분이 친윤계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정 집단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손에 쥔 자는 그 집단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국민의힘은 쇄신보다 안정을, 변화보다 반복을 택한 셈이다.
선거 직후 쏟아졌던 반성의 말은 있었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따랐는가. 무엇을 바꾸겠다는 구체적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대선이 끝난 지 보름이 지났지만, 당의 무게 중심은 변함없다. '변하고 있다'고? 택도 없는 소리다. 국민들은 그 말의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치는 변화의 언어를 말하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을 때, 국민은 냉소로 응답한다. 지금 국민의힘은 그 경계에 서 있다. 지도부의 얼굴만 바꾸고 구호만 외치는 것은 쇄신이 아니다. 패배에 책임을 지지 않고, 당을 쇠퇴하는 길로 이끈 이들이 다시 전면에 나서고 있는데, 국민이 다시 기회를 줄 리는 만무하다.
국민의힘은 스스로 무너졌다. 맞닥뜨린 재앙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다. 민심을 무시한 선택이 쌓이고 쌓여 결국 대선 참패로 폭발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재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선 패배 책임은 흐릿해졌고, 친윤계는 다시 당을 장악했으며, 구조는 바뀐 게 없다. 그렇게 국민의힘은 지금도 스스로 만든 재앙 속으로 또 한 걸음씩 들어가고 있다.
국민의힘은 자신이 불러온 재앙을 스스로 걷어낼 수 있는 정당이 될 수 있을까. 일단 재앙의 근원이 어디 인지부터 깨달아야 그걸 도려낼 여지가 생긴다. 그게 안된다면 국민의 다음 선택지에 국민의힘이라는 이름은 올라가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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