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백악관 복귀 예정인 트럼프
韓 경제 충격 우려…‘보편관세’ 추진
대미·대중 수출·교역 ‘빨간불’ 예고도
환율·안보·정책 불확실성은 더 커진다
47대 미국 대통령에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같이 실시된 상·하원 선거도 모두 공화당의 승리로 끝났다. ‘2기 트럼프노믹스’가 현실이 되면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충격파가 예상된다.
‘1기 트럼프’ 때는 중국을 중심으로 일부 국가를 정조준하는 보호무역 정책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보편관세’를 내세워 포괄적인 무역장벽을 세울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 경제의 주된 동력인 수출이 최근 주춤하는 상황에다 이를 핵심 동력으로 실물경제를 꾸려가는 우리나라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관세 사랑’, 폭탄으로 다가오나…中 디커플링 주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요 무역정책은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보편적 기본관세’를 도입하고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와 동일한 관세를 무역상대국에 부과하는 ‘상호 무역법’을 제정하는 것이 골자다.
앞서 중국을 타겟팅했던 트럼프 1기보다 한층 더 강화된 관세정책을 펼쳐 무역 장벽을 높이 올리겠다는 뜻이다.
무역의존도가 75%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우리나라는 상대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취약하다. 대중(對中)국 수출은 25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대미(對美) 수출도 역대 10월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는 등의 상황이 부메랑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국책연구원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달 발간한 ‘2024년 미국 대선: 미국 통상정책의 경제적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이 한국에 보편적 관세 정책이 시행될 경우 우리나라 총 수출액이 최대 448억 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국내총생산(GDP)은 약 0.67%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기준 대미 수출의존도가 전체 수출의 18.3%로 이전보다 상승하면서 성장에 부정적인 여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관세율 인상으로 인플레이션까지 부추길 우려가 미국 내수위축으로 대미 수출 전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견제가 더 강해질 수 있어 문제다.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 전방위적으로 중국과 교역 관계를 축소·단절하는 ‘디커플링(de-cuupling)’ 공약했다.
상품무역에 60% 넘는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연구개발(R&D), 금융투자 등 중국과의 전반적인 교류를 억제하는 내용이다. 이는 바이든 정부의 ‘디리스킹(de-risking)’ 전략과는 차별화된 것이다.
이같은 미국의 경제로 중국 완제품의 대미 수출이 감소하면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한국에도 직·간접적인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공급망 연계성을 고려한 대중 수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트럼프 뜻대로 관세가 인상되면 한국의 대중 수출 연계 생산이 6% 이상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중 수출 연계 생산은 중국의 생산 활동이 한국의 생산을 얼마나 유발하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제조업 공동화 현상 우려…외교·안보도 걱정
트럼프의 귀환으로 한국의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주목된다. 외교와 안보 전략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법인세 인하 등 트럼프의 친기업 기조는 미국 내 공급망을 구축한 한국 기업에는 긍정적인 영향이지만, 국내 투자 측면에선 기업들의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가속화할 우려도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아래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이 중요한 역할을 해온 한미동맹도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의 분담 몫) 대규모 인상 요구 등으로 격랑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방영된 미국 폭스뉴스의 ‘포크너 포커스’ 타운홀 미팅에서 “한국에 4만2000명의 미군이 있다”며 “그들(한국)은 돈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한국)은 부유한 나라”라며 “아니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미는 미 대선을 앞두고 지난달 2026~2030년에 적용되는 제12차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에 합의했다. 협정은 2026년 한국이 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 대비 8.3% 인상한 1조5192억원으로 정하고, 이후 인상률은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연동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다만 트럼프는 협상 타결 후에도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부유한 나라를 의미)’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내가 거기(백악관)에 있으면 그들(한국)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연간 100억 달러를 지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의 공약대로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진행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부의 재정 사정 자체가 빠듯한 만큼,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으로 인한 환율 변동성도 정부의 안정적 기조의 거시정책 운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6일 오후 8시 48분 기준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400원을 넘어섰다. 7개월 만에 1400원대로 올라선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트럼프의 중국 견제 발언 등으로 인해 원화 가치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경제 정책의 양대 축인 ‘감세’와 ‘관세’는 미국 인플레이션 압력을 상승시켜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하가 더뎌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강(强)달러 현상이 더 거세지는 모습도 문제다.
트럼프의 급진적인 정책으로 인해 글로벌 경제에도 상당한 불확실성이 직면할 수도 있다.
보호주의 기조를 대폭 강화해 미국 내 국내 제조업 기반 재건을 도모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면 미국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으로 연결된 한국이나 유럽연합(EU)과의 파열음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기획재정부도 미국 대선으로 인한 국제정세 변화에 대비해 내년 예빕를 6000억원 증액요청하기도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올해 미국 대선 등(으로 인한) 변동 가능성에 내년 예비비 6000억원을 증액 요청했다”고 언급했다.
“정책기조 현실화땐 상당한 영향”…정부, 3개 회의체 가동
정부는 트럼프 2기 체재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외환·통상·산업 등 별도 회의체를 가동하기로 했다. 트럼프 당선인 정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빠르게 분석한 뒤 대응하겠단 방침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대외경제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우리 대외경제 여건에도 큰 변화가 예상되지만, 한미 양국은 굳건한 한미동맹 기조로 수십년간 상호호혜적인 경제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 부총리는 “앞으로도 양국간 경제협력 관계가 단단한 바위처럼 유지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하겠다”면서도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강조해온 정책기조가 현실화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에 “정부는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범정부 컨트롤타워’로 하고 선제적이고 빈틈없는 대응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금융·외환시장(거시경제금융회의), 통상(글로벌 통상전략회의), 산업(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등 3대 분야별로 각각 별도 회의체를 가동하기로 했다.
최 부총리는 “미국 새 정부·의회 구성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등으로 불확실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각별한 긴장감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과도한 시장변동성에 대해서는 “단계별 대응계획에 따라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통상정책에 대해서는 “현안별로 대응계획을 마련하고, 양국 협력 채널을 가동해 적극적인 소통을 이어가겠다”며 “업계의 목소리를 들으며 대응 전략을 구체화하고, 우리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산업 부문 불확실성도 언급하면서 “이달 중으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가동해 대응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산업의 질적 도약과 고부가가치화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 부총리는 “우리 기업이 사업모델 전환을 추진하면, 정부는 가용수단을 총동원해 뒷받침하겠다”며 “인공지능(AI)·양자·바이오 등 3대 게임체인저 기술에 투자를 확대하고 고부가 유망업종 중심으로 서비스 수출도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