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수출 동력 약화·中 저가 공세에 탄핵 정국까지
美 HBM 대중국 수출 통제 임박했는데 韓 반도체 특별법 통과 난항 '발목'
내년 삼성 DS 실적 개선 난망…기업들 전략회의 통해 '플랜B' 수립할 듯
SK하이닉스 연구원들이 경기도 이천공장에서 반도체 생산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자료사진)ⓒSK하이닉스
예기치 못한 탄핵 정국을 맞이하면서 반도체업계가 고민에 빠졌다.
정부가 추진해왔던 주 52시간 예외 적용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 통과는 불투명해졌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기여해온 메모리 가격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율은 큰 등락폭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은 정치·산업 혼란 속 내년도 사업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위기에 몰렸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탄핵 정국 장기화 조짐으로 국내 산업·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9일 기준 1437원으로 비상 계엄 사태 전인 3일(1402.9원)과 비교해 34.1원(2.4%) 올랐다.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은 기업 수출 측면에서 긍정적이나 장기적으로 보면 원자재값 상승으로 부담이 커진다.
해외에서 구매해오는 웨이퍼 등이 오르면 오를수록 제조원가가 커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는 향후 장비·설비 반입 시 비용 부담이 늘어난다.
일각에서는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면 원·달러 환율이 1450원, 1500원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어 기업들로서는 복합적인 대응이 필요해졌다.
반도체 사이클도 낙관적인 상황을 기대하기만은 힘들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내수·수출의 경제 성장 견인력 동반 약화 우려' 보고서를 통해 우리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경기가 사이클상 하강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최근 들어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하락하고 우리 메모리반도체(HSK 854232) 수출 물량이 감소하는 모습, 반도체 내 주력 품목인 D램 가격이 하락하는 등 반도체 사이클 하강 징후가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11월 말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 평균 가격은 1.35 달러로 7월(2.10 달러) 이후 4개월 새 35.7% 급감했다.
낸드플래시 가격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1월 말 메모리카드·USB향 낸드플래시 범용제품(128Gb 16Gx8 MLC) 가격은 2.16 달러로 8월(4.90 달러)과 비교해 55.9%나 떨어졌다.
이같은 메모리 가격 하락은 스마트폰, PC 등 전방 IT 수요가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 업체들이 범용 D램을 저가에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D램 1위 업체인 CXMT(창신메모리)는 주력 제품인 레거시(범용) D램인 DDR4를 저가에 공급하며 전체 D램 가격을 깎아내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3분기 잠정실적 발표에서 "중국 메모리 업체의 레거시 제품 공급 영향으로 실적이 감소했다"는 설명자료를 낸 배경이기도 하다.
여기에 국내 반도체 기업 실적 개선 1등 공신인 HBM(고대역폭메모리)마저 미국의 대중국 제재 범주 안에 들면서 불확실성은 커졌다.
삼성전자의 경우 구형 HBM 제품 일부를 중국 등에 공급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이 HBM 매출의 약 20%를 중국에서 창출하고 있다"고 했다. HBM 수출통제는 이달 31일부터 적용된다.
공사 진행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연합뉴스
반도체 경쟁력 체질 개선이 시급하지만, 그간 업계가 촉구해온 반도체 특별법은 갑작스러운 탄핵 정국으로 통과가 불투명하다.
반도체 특별법은 반도체 기업 근로자들의 경우 주 52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보조금 등 재정 직접 지원을 골자로 한다.
업계는 대내외 경쟁환경이 심화되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현행 근로시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정부에 전달해왔다. 그러나 기존 제도로도 노동시간 유연화가 가능하다며 '노동시간 규제 완화' 조항에 반대해온 민주당이 이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저가 공세, 수출 동력 약화, 정치 리스크, 환율 상승 등이 한 데 얽히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은 작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증권가를 중심으로 내년도 실적을 비관하는 제기하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키움증권은 삼성전자에 대해 "엔비디아향 HBM3E 양산 공급 지연, 중국 CXMT의 DDR4 저가 판매, 범용 D램 수급 악화 등으로 연말·연초 동안 예상치를 하회하는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며 DS(반도체) 부문 내년 영업이익이 19조2020억원에 그칠 것으로 봤다.
노무라증권은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8만8000원에서 7만2000원으로, SK하이닉스는 28만원에서 27만원으로 내리며 "2025년 예상되는 범용 D램과 낸드 가격의 약세 규모가 기존 전망 대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진투자증권은 "반도체 업황은 둔화하고 있으며 수출 통제 등 부담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계엄 발동과 해제, 지도자 공백이라는 초현실적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이와 같은 국내외적 리스크를 감안할 때 주요 기업들의 실적 전망 하향과 밸류에이션 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절체절명의 상황을 맞닥뜨린 국내 주요 기업들은 연달아 전략회의를 열고 경영환경 및 시장대응 점검에 나선다.
삼성전자는 이달 중순부터 글로벌 전략회의를 개최한다. 부진의 늪에 빠진 가전, TV 사업부를 점검하고 내년도 갤럭시 신제품 글로벌 마케팅 전략 논의가 예상된다.
무엇 보다 기술 경쟁이 한창인 HBM를 중심으로 한 차세대 기술 로드맵을 비롯해 파운드리 기술 제고 전략, 복합 위기 타개책 등이 심도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LG도 이달 중 구광모 회장 주재로 사장단 협의회를 가질 전망이다. 내수 부진 및 대외 불확실성 확대가 예상대는 상황에서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리스크 관리 및 성장 전략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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