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 이탈 가속화에
4대 금융 주주 소통 강화 나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 여파가 장기화되면서 금융권의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마치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운 모습이다.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어서다.
금융그룹들은 해외 투자자들에게 견고한 기초체력을 알리는 내용의 주주서한을 보내고 밸류업 프로그램을 차질 없는 이행을 약속하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한편에선 정치 리스크 장기화로 인한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이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국내 증시 주요 기업 300곳으로 구성된 KRX300지수 하락 폭에 비해 은행지수와 보험지수가 3~4배 떨어진 것이다.
다른 업종에 비해 금융주의 하락 폭이 큰 이유는 외국인 투자자가 금융지주와 은행, 보험사 등 금융 관련주를 대규모로 팔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 금리와 환율 변동성도 커지기 때문에 은행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이다.
또 정부의 역점 사업 중 하나인 밸류업 프로그램이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금융주에 타격을 입혔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국내 기업이 스스로 주가 부양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주주친화적인 노력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다. 금융당국이 국내 주식시장 재평가를 위해 밸류업 정책을 발표한 후 은행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은행주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그동안 금융주는 주가순자산비율이 1배가 되지 않는 등 대표적인 저평가주로 분류됐기 때문에 밸류업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으면 주가가 크게 오를 것이란 기대가 컸던 터였다.
금융지주 회장들도 밸류업에 적극 나섰다. 지난 5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양종희 KB금융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등은 뉴욕을 방문해 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IR을 진행하며 투자자 관심을 잡는데 집중했다.
그러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정국에 들어서면서 밸류업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문제는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의 외국인 지분율은 지난 10일 기준 평균 62.75%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주요 외신들은 국내 정치 상황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에 주목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한국 경제를 ‘터뷸런스(난기류)’라고 표현했고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정치 리스크가 장기화되면 한국의 신용도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 전망도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의 정치적 혼란을 고려할 때 한국 증시의 할인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며 “계엄 선포 이후 정치적 혼란은 국가 전망을 더 어둡게 만들었고, 이는 한국의 디스카운트를 근절하기 위해 시작한 밸류업 프로그램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지주들은 금융당국의 주문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와의 소통을 강화하며 이탈 방어에 나서는 등 대외신인도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KB금융은 주요 글로벌 투자자에게 서한을 보내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올해 10월 발표한 밸류업 방안에 대한 변함없는 이행을 약속했다. 신한금융도 해외 투자자 대상 콘퍼런스 콜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20개국 250개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금융시스템 회복력에 대해 소통하고 있으며 밸류업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나금융은 함영주 회장을 포함한 그룹 경영진과 이사회가 해외투자자와 대면·비대면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 진출국 현지에 24시간 상시 대응체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환율 상승에 대비해 위험가중자산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등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금융 역시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컨퍼런스콜을 열어 흔들림 없는 주주 환원 정책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밸류업 프로그램 등 시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흔들림 없이 지속될 것이란 점을 강조하며 주주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6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탄핵, 권력교체, 정치적 불안정 여부와 관계없이 밸류업 프로그램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밸류업 프로그램이 후퇴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은행들이 2027년까지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 발표 등 밸류업 공시를 이미 마무리한 상황”이라며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반주주를 위한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으로 원전 이슈 등처럼 특정 정치적 성향과는 상관없이 모두에게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커 다시 후퇴할 가능성은 작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국내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의 불안도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 리스크가 단기간에 매듭짓지 못할 경우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러면서 “밸류업의 기본은 배당 등 주주환원인데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정치 리스크를 예측하기 어렵고 대응할 수도 없다 보니 투자를 하지 않는 게 최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권이 적극 나서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대응하고 있지만 탄핵 정국이 단기간에 끝날 사안이 아니고 금융시장 변동성도 커 리스크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