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中 ‘단일 무기’ 앞세운 공세… 韓 배터리, 다변화로 반격

인터배터리 2025, 배터리 전시회 중 中 제외 세계 최대 규모로 개최

중국 BYD·EVE 등 대형 업체들 대거 참가…23년 24개사→79개사

LFP·각형에 국한된 中 배터리, 한국은 다양한 폼팩터로 시장 대응

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5' 행사장이 현장 등록을 위해 줄을 선 관람객으로 붐비고 있다. ⓒ데일리안 백서원 기자

“배터리 시장의 폼팩터는 표준화가 안 됐습니다.”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5’에서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 말에는 국내 배터리 업계가 중국의 공세에 맞설 수 있는 힌트가 숨어져 있다.

중국이 저가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지만, 단일 제품과 기술력으로는 다양해지는 시장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기 어렵다. 이에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고객사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인터배터리 2025의 삼성SDI 부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이날 현장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기)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관람객들로 붐볐다. 올해 사전등록인원은 약 5만명으로 약 4만3000명이었던 지난해보다 17% 가량 증가했다. 전시회 규모도 688개사가 참가해 2330부스를 꾸리며 전년 대비 약 23% 확대됐다. 이는 중국 전시회를 제외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배터리 전시회다. LG에너지솔루션의 부스 이벤트가 조기 마감되는 등 관람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이번 인터배터리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참가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대폭 늘어났다는 것이 가장 눈에 띄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업체만이 조용히 참여하던 모습과는 달리, 이번에는 세계 1위 전기차 업체이자 2위 배터리 제조사인 BYD와 글로벌 배터리 출하량 9위 EVE가 처음으로 참여했다. 인터배터리에 참가하는 중국 기업은 2023년까지만 해도 24개사에 불과했으나 올해 79개사로 늘었다.

인터배터리 2025의 삼성SDI 부스 내 전고체 배터리.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대형 중국 기업들뿐만이 아니라 ‘한국 대리점 모집’ 등 한글이 적힌 홍보물을 부착시킨 중국 중소기업 업체들의 부스들도 줄지어 존재감을 드러냈다. 작은 규모에도 대부분 부스마다 2~3명씩 관심을 보이는 관람객들이 설명을 듣는 등 국내 중소기업 부스보다 붐비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중국 관광객들과 중국 업체 관계자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전시회 중앙에 다양한 연령층의 중국 관광객들 수십명이 모여있기도 했다. 짧은 기간 내에 중국 배터리 업계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실제로 중국은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의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시장 점유율은 약 70%에 육박하며 중국을 제외한 시장 기준으로도 중국 업체 CATL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터배터리 2025의 LG에너지솔루션 부스 내 원통형 배터리.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이처럼 약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원재료 조달부터 생산, 공급망까지 수직 계열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대량 생산을 바탕으로 가격을 낮춘 전략이 주효했다. 특히,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등 원가 경쟁력이 높은 제품군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가격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LFP, 미드니켈 등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아직 중국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터배터리 2025의 SK온 부스 내 제품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이런 상황에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다변화’ 전략을 강점으로 중국과 맞선다는 전략이다.

현재 국내 배터리 기업들과 경쟁할만한 글로벌 톱티어 중국 배터리 업체의 제품과 기술력은 LFP·각형에 국한돼 있다. 하지만 기존에 파우치형만 고집하던 레거시 자동차 제조사들도 최근에는 각형을 주문하는 등 다양한 수요들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맞춰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다양한 케미스트리와 폼팩터로 시장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날 처음으로 원통형 46시리즈 배터리를 공개했다. 46시리즈는 기존 2170 배터리보다 에너지와 출력을 최소 5배 이상 높이며 향후 원통형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 제품이다. 이와 함께 파우치형 LFP CTP(Cell-To-Pack) 셀 유닛(Unit)과 HV(High-Voltage) Mid-Ni(미드니켈) 배터리도 전시했다.

삼성SDI도 전고체(ASB), 각형·원통형 등 다양한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선보였다. 이날 사장 취임 후 가진 첫 공식 석상에 나선 최주선 삼성SDI 사장은 46파이 배터리의 양산화 시점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올해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구체적인 고객을 확보했다”며 “샘플도 제출했고 양산도 곧 시작하게 된다”고 말했다.

SK온은 3대 폼팩터(파우치형·각형·원통형)를 모두 전시하며 시장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할 준비가 됐음을 강조했다. 특히 SK온은 원통형 실물 모형을 처음으로 공개하고 원통형 배터리 개발 전략과 방향성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