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전기 등 주거비 물가 2.0% 상승
대내외적 불안정 정세로 환율 급등 영향
주거비 부담···2030대 ‘캥거루족’ 증가
체감 물가 괴리감···주거지원비 반영 의견 대두
주거비가 천정부지다. 집에서 발생하는 생활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생활하며 필수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전기·가스·수도비를 비롯한 도시가스비 등이 치솟으면서 혹자는 집에 누워 숨만 쉬어도 ‘돈이 든다’고 하소연한다.
정국 불확실 장기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인한 고환율의 영향으로 풀이되는 가운데 일부 에너지공기업마저 요금 인상을 고민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주거비 물가 2.0%↑···전기요금 동결 불투명
주거비 물가 상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일 통계청 국가데이터포털에 따르면 주택·수도·전기·연료 소비자물가지수는 2021년 101.63, 2022년 107.19, 2023년 112.63, 2024년 114.50로 해마다 꾸준히 오르고 있다. 올해도 1월 115.87, 2월 116.47(전년 동월 대비 2.0% 상승)로 상승하고 있다.
주거생활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품목도 줄줄이 인상됐다. 지난달 전기·가스·수도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40.87로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세부품목별로 살펴보면 지역난방비(9.8%)와 도시가스(6.9%), 상수도료(3.7%)가 모두 올랐다. 아울러 집세는 104.45로 0.7% 상승했다. 월세(1.0%), 전세(0.3%) 등이 오른 영향이다.
경기 수원에 거주하는 김모(32·여)씨는 “혼자 살고 있어 가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지난달 가스비가 13만원 정도 나와 깜짝놀랐다”며 “더 큰 집으로 옮기고 싶어도 난방비 등을 생각하면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가운데 한국전력공사가 오는 21일 올해 2분기 전기요금 조정 여부를 발표한다.
일각에서는 한전이 지난해 영업이익 8조3489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을 성공해 올해 전기요금이 동결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지만 2021년 이후 눈덩이처럼 쌓인 누적 영업적자(34조7000억원)를 메워야 해 사실상 동결 여부는 불투명하다.
실제로 한전의 이 같은 실적 개선에는 전기요금 인상이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전기 판매 단가는 kWh(킬로와트시)당 162.9원으로, 전년 대비 6.6% 오른 수준이었다.
고환율로 석유류 등 급등세···물가 상승 지속될 수 있어
주거비 물가 상승폭은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더 가팔라졌다. 연말 대내적으로는 비상계엄 사태가 터졌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을 예고하면서다.
이로 인해 환율은 신정부 출범을 앞두고 달러화 강세가 이어졌고 국내 정치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지난해 말 1470원대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이에 석유류 등 물가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환율이 오르면 국제유가가 동일해도 석유류 수입가격은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한국은행은 2월 경제전망에 따르면 석유류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024년 10월(-10.9%), 11월(-5.3%) 감소했다가 12월(1.0%), 올해 1월(7.3%) 증가했다.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환율 및 유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1월 중 2%대 초반 전년 동월 대비 2.2%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는 환율 및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석유류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과거 환율 급등기와 비교해 보면 이번 상승기에는 환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시작해 짧은 기간 내 큰 폭으로 올랐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환율 국면이 미 관세정책 등의 영향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어 이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주거비·생활비 없어요”···캥거루족 증가
주거생활비는 청년층에게 특히나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취업하지 못했거나 직장을 다니고 있다 해도 널뛰는 물가를 감당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20~30대 청년층을 중심으로 ‘캥거루족’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캥거루족은 경제적·정신적 자립심이 부족해 부모에게 의존하는 청년들을 뜻한다.
이들이 캥거루족을 자처한 데에는 취업난, 비혼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주거비와 생활비 부족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통계 수치로도 보여진다. 최근 국무조정실이 공개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모와 동거하는 만 19~34세 청년은 54.4%, 독립생활하는 청년은 45.6%로 집계됐다.
청년 가구의 월평균 생활비는 213만원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2025년 1인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인 238만2013원보다 적다.
한국노동연구원 정현상 책임연구원은 ‘지난 10년간 청년층 캥거루족 특성 변화’ 보고서를 통해 “25~39세 청년층의 캥거루족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일자리의 질이 나쁘지 않은 미혼 청년층의 캥거루족 비중이 늘고 있다. 이는 최근 상승하고 있는 주거비용 등으로 인해 월수입이 높더라도 부모에게 주거의존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자가주거비도 소비자물가에 반영해야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의식주 중 주거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그만큼 다양한 지출이 따르고, 많은 비용이 들어서다.
이런 경향에서 최근 자가주거비도 소비자물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자가주거비용은 개인이 소유한 주택에 거주하면서 지출되는 관리비, 유지보수비, 세금 등의 서비스 비용을 의미한다.
기존 소비자물가지수에는 이 같은 자가주거비를 제외한 전·월세 임차료만 공식적으로 포함돼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물가와 큰 차이를 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다. 사실상 임대인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물가지수인 셈이다.
물론 자가주거비도 1995년부터 별도로 발표되고 있으나 보조지표 수준이고, 개인이 갖고 있는 주택의 전·월세에 대한 임대료를 중심으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무섭게 치솟고 있는 부동산 시장의 현실을 반영하고, 보다 현실적인 지표를 통해 근본적인 물가 안정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오지윤 명지대 교수는 정책 논문 ‘전세가격의 비용화와 소비자물가지수: 소비자물가지수 자가주거비 반영을 중심으로’를 통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주거비 비중은 9.83%로 자가주거비가 포함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주거비 비중인 32%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