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기꺼이 껴안고 '마주보는 사람에게' [D:쇼트 시네마(118)]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4.29 14:35  수정 2025.04.29 14:35

정수지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하늘(정수지 분)은 자살상담 센터에서 자살하고 싶은 사람을 연기하는 아르바이트를 중이다. 평범하지 않은 아르바이트지만 배우가 꿈인 하늘은 무대가 아닌 이곳에서 연기로 돈을 벌 수 있고 평소 관심이 있었던 터라 열심히 참여한다.


가람(양말복 분)은 작년에 아들을 잃은 상담자다. 가람은 매뉴얼에 있는 역할이 아닌, 실제 인물같이 연기하는 하늘이 궁금해 다가간다. 하늘을 보며 아들을 떠올리는 가람은 생전의 아들을 잘 몰랐던 것 같다면서 느끼는 후회와 슬픔을 하늘에게 털어놓는다.


사실 하늘의 속사정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언니 하민(이영아 분)과 같이 살고 있으면서 부딪치기 일쑤다. 하늘이 연기하는 걸 부모님이 탐탁지 여기지 않자 불편해져 연락을 차단한 탓에 부모님은 언니 하민에게 연락을 한다. 하민은 그런 동생이 답답하고 걱정되지만 말이 곱게 나가지가 않는다.


하늘은 어느 날 우연히 집에 가는 길에 언니를 발견하고 언니가 홀로 노래방에서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본다. 그날 밤 언니의 부고 문자를 받는 꿈을 꾸고 시험을 준비 중인 언니가 죽고 싶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 언니 방으로 뛰어간다.


자던 언니는 아침부터 큰소리를 치며 동생이 깨우자 심기가 불편하고, 하늘은 언니에 대한 걱정에 울음을 터뜨린다. 타인이 삶을 마주 볼 수 있도록 도와주던 하늘은 그렇게 자신이 안고 있던 불안의 침묵을 깬다.


배우 정수지가 직접 연출과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마주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상담 센터라는 특수한 공간을 활용해, 죽음을 주제로 하면서도 삶에 대한 영화로 방향을 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영화는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무겁게 짊어지기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작은 균열과 감정의 파동 속에서 삶을 응시하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다. 하늘이 남의 불안을 연기로 껴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불안을 외면하다가,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앞에서 비로소 침묵을 깬다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러면서 특정한 사건을 극적으로 부풀리기보다, 삶이란 결국 작고 사소한 불안과 용기를 반복하며 나아가는 것임을 조심스럽게 말한다. 감정의 진폭도 과장이 없다. 배우들은 고여 있는 감정들을 차분히 쌓아 올리며 슬픔이나 죄책감을 정리된 형태로 설명하기보다, 침묵과 눈빛, 몸짓으로 느끼게 만드는 방식이다.


감독의 시선에서 '마주보는 사람에게'는 서사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나 역시 삶을 잘 마주하고 싶다'는 다짐이자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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