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이펙스(EPEX)의 중국 푸저우 공연이 당초 예정됐던 이달 말일을 코앞에 두고 잠정 연기되면서, 한한령(限韓令, 한류제한령) 해제에 대한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번 이펙스의 공연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9년 만의 한국 국적 아이돌 그룹의 중국 본토 공연 성사다. 때문에 이 공연이 얼어붙었던 양국 문화 교류의 물꼬를 트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또다시 반복된 일방적인 공연 취소 통보는 중국 시장의 고질적인 불확실성만을 재확인시켰다.
중국의 공연 직전의 일방적 취소 통보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장 지난해 7월 한국 록밴드 세이수미가 중국 베이징 공연 개최 소식을 전했지만, 공연을 3주 앞두고 돌연 취소됐다. 지난 2023년에는 씨엔블루 멤버 겸 배우 정용화가 중국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의 오디션 프로그램 ‘분투하라 신입생 1반’ 출연진으로 캐스팅돼 녹화까지 마쳤으나 갑작스럽게 출연 취소 통보를 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정상급 아이돌 그룹들의 공연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무산되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본격화된 한한령이 케이팝 및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중국 시장 진출에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해 온 셈이다. 명문화된 규제는 아닐지라도, 암묵적인 제재는 비자 발급 제한, 현지 심의 강화, 공연 불허 등의 형태로 나타나며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사실상 한국 가수의 단독 공연은 2015년 빅뱅이 11개 도시 투어를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펙스의 이번 공연은 그간의 경색 국면을 뚫고 어렵사리 마련된 자리였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도는 남달랐다. 일부에서는 이를 한한령이 실질적으로 완화되는 중요한 변곡점으로 해석하며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기대는 물거품이 됐고,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반복되는 중국발 리스크는 더이상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할 수 없다”면서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투입해 준비한 공연이나 프로젝트가 예측 불가능한 이유로 하루아침에 좌초되는 상황은 기업 입장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 부담이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태도 변화에 미중 갈등의 격화라는 거시적인 국제 정세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또 다른 케이팝 관계자는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중국의 경계심이 문화 콘텐츠 수입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특히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한국 내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거나 특정 정치적 사안에 대한 반응들이 중국 당국을 자극하여 문화 콘텐츠 교류의 문턱을 더욱 높이고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중국은 자국 내 여론 및 정치적 상황에 따라 문화 콘텐츠 수입 정책의 고삐를 죄었다 풀었다 반복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면서 “앞서 세이수미의 공연 취소 당시에도 ‘중국 온라인에서 이슈가 돼 힘들어졌다’는 공연 이유를 전했던 것처럼 현재도 이 같은 이슈에 부담을 느낀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봤다.
사실상 업계에선, 현재로서는 중국 시장의 예측 불가능한 규제 리스크가 단기간 내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동남아시아, 북미, 유럽 등지로 시장을 다변화하며 자체적인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성장 동력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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