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에 여의도역 5번출구를 권함 [기자수첩]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입력 2025.05.15 07:02  수정 2025.10.17 16:03

여의도 5번출구 흡연구역…불특정 다수 강제 간접흡연

소수 흡연자·다수 비흡연자도 모두 손해보는 상황

경제계 일반주주 권익 보호 논의도 '같은 결말' 맞나

말과 행동 다른 금융당국…안일한 접근법에 우려

서울 시내의 한 흡연부스에서 시민이 담배꽁초를 버리고 있다(자료사진).ⓒ뉴시스

간접흡연하는 습관이 생겼다.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여의도역 5번 출구를 지나면 누구나 간접흡연을 할 수 있다.


'흡연구역(Smoking Area)'이라 명명된 공간은 버스정류장을 닮았다. 신논현역 버스정류장만큼 붐비는 인파들이 흡연구역에서 두어 발짝 거리를 두고 증기기관차 흉내를 낸다.


흡연구역에서 흡연하는 분들을 탓할 순 없다. 흡연권은 더 보장돼야 한다. 다만 영등포구청이, 보건당국이 어째서 흡연공간을 이런 식으로 마련했는지는 의문이다.


흡연구역을 지정한 목적은 '선의'였을 것이다. '소수 흡연자 권리를 보장하면서 소위 길빵으로 인한 다수 비흡연자의 불쾌감을 최소화해보자'. 하지만 그 결과물은 일대 시민의 강제 간접흡연이다.


소수의 권리도 다수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일은 제법 흔하다. 대개 소수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며 시작한 일이 모두가 손해보는 결말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최근 경제계에선 주주 권익 강화 방안이 비슷하게 흘러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주주 횡포'로 일반주주들이 손해를 본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일반주주 권한을 높이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주주 환원을 강조하는 단체에는 외국계 자본을 굴리는 담당자들이 제법 속해 있다. 거칠게 얘기해서 그들의 목적은 국내 기업 배당액을 높여 주머니를 채우는 데 있다. 장기적 사업 계획을 염두에 두는 기업 오너와 달리, 그들의 관심은 단기적 이익 증대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최근 강연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마음대로 돈을 빼가고 싶은데 한국에선 재벌 가문이 틀어쥐고 못 빼가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특유의 지배구조를 감안하면 일반주주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지만,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상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던 더불어민주당도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추진했던 정부 및 국민의힘도 주주 권한 강화 필요성엔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적정선을 찾기 위한 논쟁이 필요했으나 두 법안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논의만 이어졌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상법 개정이냐 자본시장법 개정이냐, 하나는 되고 하나는 안 되는 이슈라기보다 디테일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가 상당히 중요한 이슈"라고 했다. 물론 말뿐이었다.


민주당이 밀어붙인 상법 개정안에 문제가 있다면, 디테일을 따져 물었어야 한다. "상법 개정의 부작용을 없애는 부분이 전혀 안 들어갔다"면 부작용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하고 수정을 촉구했어야 한다.


특히 '일반주주 보호 필요성에 100% 공감한다'면서 통과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 추진 의지만 밝힌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적 불확실성 탓에 운신 폭에 한계가 있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다만 말과 행동이 다르니, 최선의 성과를 내려는 의지 자체가 없었던 것 아닌지, 흘겨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녹록잖은 여건 속에서 나름 노력했다'는 생색내기가 목표였는지도 모르겠다.


당국의 안일한 접근이 국민에게 어떤 불편함을 주는지, 관용차에서 내려 여의도역 5번출구를 거닐어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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