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남아공의 백인 농부 학살이라고 주장하며 제시한 사진은 남아공이 아닌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라마포사 대통령 면전에서 내보인 사진은 지난 2월3일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도시 고마에서 촬영된 로이터뉴스 영상의 캡처 화면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영상은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상황을 촬영했다. 르완다 지원을 받는 반군 M23의 공격 이후 시신을 수습하는 인도주의 단체들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남아공의 백인 농부와는 전혀 무관한 장면이다.
더군다나 트럼프 대통령은 남아공에서 학살당한 백인 농부들이 매장당하는 모습이라고 주장하며 유사한 상황을 담은 영상도 재생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트럼프가 재생한 해당 영상과 사진을 본 뒤 “저게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난 저곳을 본 적이 없다. 어디서 촬영된 것이냐”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재차 남아공에서 촬영된 영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라마포사 대통령과의 회담 전에 영상 및 관련 기사를 준비하고 직접 자신의 집무실 조명까지 조정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라마포사 대통령에 보여준 사진은 미국의 보수 성향 온라인 매체 ‘아메리칸 싱커’가 남아공과 콩고민주공화국 지역의 인종갈등을 다루며 작성한 글에 첨부된 사진이다. 이미지에는 자막 설명이 없었다. 해당 글을 작성한 아메리칸 싱커의 편집장 안드레아 위드버그는 “트럼프가 이미지를 오인했다”고 답했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도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남아공 백인 학살'의 증거로 제시한 영상과 관련해 잘못된 설명을 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영상 속의 한 장소를 지목하며 '백인 농부 1000명이 매장된 곳'이라고 했는데, 확인 결과 2020년 9월 남아공 뉴캐슬 인근에서 열린 백인 농부 부부 피살 추모 행진 장면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왜곡된 사진을 남아공의 백인 박해라고 주장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상을 촬영한 로이터 영상기자 자파르 알 카탄티는 “그날 고마 현장에 접근하기 위해 반군 M23과 협상하고 적십자(ICRC)와 조율해 간신히 촬영한 영상인데, 트럼프가 이를 남아공의 인종 학살 증거로 사용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미국 대통령이 내가 콩고에서 찍은 영상을 남아공의 ‘백인 학살’ 증거로 왜곡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아공 현지 언론은 이번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마치 기습 공격하듯 잘못된 동영상을 틀고 기사 뭉치를 전달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을 ‘매복’이라고 묘사하며 라마포사 대통령이 침착함을 유지하며 의연하게 대응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태는 이날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대변인과 취재진 간에 날선 설전이 벌어졌다. NBC 기자는 “대통령이 1000명 이상의 백인 남아공인들이 살해돼 묻힌 매장지를 보여주는 영상을 재생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고, 그 영상도 사실이 아니다. 대통령이 거짓 주장을 기반으로 세계 정상 앞에서 생중계한 것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그 영상은 백인 농부들이 인종 박해로 희생된 것을 상징하는 십자가들을 보여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NBC 기자는 “대통령은 그곳이 (상징이 아니라) 실제 매장지라며, 시신이 묻혀 있는 장소다. 영상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무엇보다 백악관은 이런 영상이 어떤 절차로 검증되는지, 왜 그런 자료가 세계 정상 앞에서 검토 없이 보여졌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레빗 대변인은 “그 영상의 무엇이 근거 없다는 거냐”며 “그 영상은 정부로부터 인종적으로 박해받아 사망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십자가들을 보여준다”고 강변하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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