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된 동생 [정명섭의 실록 읽기⑫]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6.10 14:01  수정 2025.06.10 14:01

가끔 앞 뒤가 안 맞는 문장이나 말들이 있다. 예를 들어 2005년 모 연예인이 음주운전을 하고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발언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정밀하고 방대한 기록이며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많은 노력들을 했다. 따라서 얼토 당토 않은 얘기들이 그대로 실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서 그런 발언을 해야만 하는 상황 역시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각하게 만들곤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담겨진 가장 애매하고 이상한 발언은 아마 서기 1400년 2월 4일, 정종이 즉위한 지 2년째 되던 해의 실록에 남아있다.


경복궁 근정전 (출처 : 직접 촬영)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나는 직접 이 아우로 아들을 삼겠다.


제2차 왕자의 난이 끝난 직후, 정종은 이방원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다. 자신에게는 아들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는데 그에게는 확인된 아들만 15명이 있었다. 모두 적자가 아니라 서자이긴 했지만 왕실은 적서를 크게 구분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왕실의 대가 끊길 위험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종은 15명이나 되는 아들을 놔두고 굳이 동생인 이방원을 후계자로 삼았을까? 거기다 왕세제라는 직책을 피하도록 아들로 삼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말이다.


직접 칼을 들어서 아버지의 손발이나 다름없는 측근들을 죽이고, 배다른 동생까지 없앤 이방원에게는 딱 하나 부족한 게 있었다. 바로 명분이었는데 아들에게 상속하는 부자 상속은 물론이고, 형제에게 물려주는 형제 상속, 그 어느 것에도 해당 되지 않았다. 신의왕후 한씨 소생의여섯 아들 중에 다섯 번째였기 때문이다. 장남인 이방우가 모종의 이유로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위에 세 명의 형들이 있었다. 이방원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때려죽인 이유도 공을 세워서 인정받겠다는 욕심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이복동생, 그것도 막내 동생에게 세자 자리가 돌아갔다.


왕위는 둘째치고 목숨까지 위험해진 상황에서 그는 아버지를 상대로 싸움을 벌였고, 패배했다면 방원의 난으로 역사에 기억될 뻔했지만 승리했다. 그리고 형인 이방간 역시 제2차 왕자의 난으로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러고도 바로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에게는 형이 한 명 더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둘째 형 이방과였다. 거기다 이방과는 바로 위의 형인 이방간처럼 욕심꾸러기가 아니었다. 아버지에게는 효자였으면서 전쟁터에서는 함께 나서서 싸우곤 했다. 어떻게 보면 이방원보다 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거기다 둘째 아들이었으니, 배다른 동생들이 어린 서자라는 명분으로 왕위를 계승할 명분이 없다고 칼을 들었는데 정작 자기가 형을 제치고 왕위에 오를 수 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방원이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형님 먼저’였다.


그렇게 해서 조선의 두 번째 임금인 정종이 탄생했다. 재위 기간도 불과 2년에 불과할 정도로 짧고 실제 권력도 없었기 때문에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정식 임금으로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공정왕이라고 불리다가 한참 지난 숙종 때가 되어서야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는다. 다행스럽게도 이방과는 자신의 처지와 능력, 그리고 동생의 야심을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왕위에 오르자마자 이방원을 아들로 삼는 파격적인 조치까지 취하면서 후계구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아프고 힘들다면서 동생에게 물려줄 명분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아마 그런 행동과 눈치 때문에 그나마 해피엔딩으로 동생인 방원의 칼날을 피해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15명이나 되는 아들들을 서자라고 무시하고, 자기 소생이 아니라면서 외면했다. 그리고 서기 1400년 11월 13일에 별궁으로 물러나면서 동생이었던 새로운 아들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정종은 상왕이 되었는데 이성계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태상왕이 되었다. 물론, 이방원은 울면서 사양했지만 아버지 이성계랑 똑같이 거부하지 않고 왕위를 물려받는다. 양위 퍼포먼스가 벌어진 곳은 개경이라서 이방원은 공양왕을 몰아낸 아버지 이방원처럼 수창궁에서 즉위하게 되었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아들로 삼은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준 정종은 그 이후에 무려 19년을 살아서 동생인 이방원이 아들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을 지켜 봤다. 그리고 권력이라는 족쇄를 풀고 격구를 마음껏 즐기고 온천을 돌아다니면서 유람을 즐겼다. 심지어 왕위를 물려준 동생 이방원보다 더 오래 살았다. 사람의 마음을 블랙홀처럼 끌어들이고 심연에 있는 욕심이라는 원초적인 본능을 억누른 탓에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말년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 같은 동생 이방원과 장난도 치면서 살았다. 아마 이방원과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이방원이 죽인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오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정명섭 작가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