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셈법, 이 대통령과는 다르다
첫째, 북·미 정상회담 중재
둘째, 과감한 남북경협 조치
북한이탈주민 문제…주한미군 감축
통일부가 대북 전단 기구 살포를 금지한 데 이어 국방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김정은이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우리가 변하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직접 지시였다 한다.
김정은으로의 길을 재촉하는 이 대통령이다. 지난 정부와 달라야 한다는 것을 넘어 대통령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워준 김정은에 대한 인사다.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100억원의 돈을 북한에 바친 것은 사실이고, 법적 심판의 문제는 이 대통령이 그것을 알았느냐 혹은 이화영 당시 경기부지사가 독단으로 했는가다. 김정은이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이 지시했다고 까발렸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은커녕 수감을 앞둬야 했을 것이다.
일단 김정은은 이 대통령의 선(先)조치를 빙그레 지켜보고 있다. 물론 이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자신에게로 오는 길을 순순히 열어줄 마음은 추호도 없다.
빚을 갚으려, 자신의 정치력을 보여주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용으로 임기 5년짜리 남쪽 대통령의 갈길 바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지금까지 잘 이용한 그다. 더구나 임기가 단축될지도 모르는 이 대통령의 다급함을 즐기며 줄다리기할 것이다.
이 대통령에겐 남북대화 복원이나 교류 협력 재개가 우선순위는 아닐 것이다. 3번씩이나 김정은을 만난 문재인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 이 대통령은 그 이상의 만남과 관계 형성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종석의 국가정보원장 임명이, 정동영의 통일부 장관 기용 하마평이 그것을 반증한다.
문제는 김정은의 셈법이 이 대통령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첫째, 북·미 정상회담 중재다. 남쪽을 징검다리로 해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이유가 없다.
트럼프가 후보 시절은 물론이고 취임 후에도 자신을 만나려 계속 구애하는 마당에, 특히 며칠 전에는 친서까지 자신에게 보내려 한 터에 굳이 남쪽의 힘을 빌릴 이유가 없다.
더구나 트럼프와 이재명의 관계가 어떤지, 어느 정도의 신뢰가 있는지, 이재명이 트럼프를 움직일 힘이나 있는지 전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에게 북·미 관계 중재를 믿고 맡길 수는 없다.
둘째, 과감한 남북경협 조치다. 김정은이 원하는 대북 제재 완화, 북·미 관계 개선과 정상화, 미국의 대북 투자는 모두 북·미 간 사안이다. 이 대통령이 대북 제재를 완화할 능력도 없고 형편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원하는 것은 금강산관광과 같은 여행 재개다.
‘2민족·2국가’를 주장하는 자신과 별개로, 이 대통령이 분단 민족 간의 만남이라 주장하며 미국과 국제사회가 반대하더라도 금강산관광을 포함한 대북 여행을 과감하게 재개한다면, 김정은이 자신으로 향한 길에 이재명에 앞에 놓은 하나의 허들을 제거할 용의가 있을 것이다.
관광이야말로 현금 장사고 달러박스다. 동해안, 백두산, 양덕 등에 관광 인프라는 진작 구축해 놓았다. 자신의 치하에 색색으로 멋들어지게 만든 평양의 스카이라인도 남쪽 인민에게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셋째, 북한이탈주민 문제다. 배신자에 불과한 북한이탈주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까지 만들어 대우하고 통일 전선에도 활용하고자 한 윤석열 정부의 노선을 이 대통령이 어떻게 할 것인가가 김정은이 이재명 사이에 둔 또 하나의 허들이다.
다가오는 7월 14일 2주년에 이 대통령이, 이 정부가 어떻게 처신할지 김정은은 유심히 보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북한이탈주민이 생활고를 못 이겨 다시 북한으로 가려 트럭으로 통일대교를 돌진했던 사건이 일어났고, 최근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 정부 아래서 북한이탈주민에 관한 관심·배려가 줄어든다면 다양한 형태로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이 이런 행동을 영웅적 투쟁으로 선전하고, 북에 남은 일가친척들을 천대·숙청에서 예우로 돌아서고 선동하면, 북한이탈주민이 가족이라도 살리려고 더욱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다.
넷째, 주한미군 감축이다. 김씨 3대 필생의 숙원이 주한미군 철수다. 하지만 핵무기 개발·정예화가 진전되는 한, 자신의 무력 통일 노선이 포기되지 않는 한, 주한미군 철수를 받아들이지 않을 남한 정서를 김정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트럼프가 대외 안보 전략을 재수립하면서, 주한미군의 임무를 대북에서 대북·중으로 확대 조정하는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 흔드는 상황이다.
물론 트럼프도 주한미군 감축이 아니라 사실상 증강이 본심일 것이다. 중·대만 간 유사 사태 발생 시 북한을 묶어두고, 중국의 모든 것을 감시하면서 중국이 대만에만 집중할 수 없도록 하는 주한미군의 전략성을 고려할 때, 트럼프가 아니라 어떤 미국 대통령도 주한미군의 상징적이 아닌 ‘의미 있는 감축’을 고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제는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훈련 비용을 대폭 증액 부담하고, 주한미군 역할의 유연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트럼프 대외정책의 핵심이 중국 견제인 상황에서 중국에 인접한 대륙 전진기지인 주한미군의 사활적 국가이익은 더욱 커졌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이 대통령이 이 기회를 활용해 주한미군 감축을 밀어붙일 것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은 전쟁에 전혀 관심이 없고, 남쪽과는 다른 민족이고 별개의 국가라는 ‘2민족·2국가론’에 입각해 국제사회의 통상적인 선린·우호 관계 형성을 원한다면서, 행정·입법·사법 3권을 틀어쥔 이 대통령이야말로 외세를 이 땅에서 몰아내는, 최소한 주한미군의 ‘의미 있는 감축’을 실행하는 선구자가 될 적임자라며 충동질할 것이다.
이 대통령이 만약 최소한 주한미군 감축 목소리를 높이면, 김정은으로 향한 매우 높은 허들 하나를 제거하게 될 것이다.
어찌 되었든 김정은은 이재명을 빨리 만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 대통령의 운신을, 이종석 원장이 무엇을 전해오나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다.
글/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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