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국회의원
지난 6월 26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문화산업 육성에 힘을 기울여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인수위 없이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국정 기조를 그리고 있는 국정기획위원회 역시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대통령 임기 내 “K-컬처 시장 규모 300조 원 달성, 문화 수출액 50조 원 달성, 세계 문화강국 Top 5 진입”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2022년 20대 대선 때 함께했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당시에도 이재명 대선후보는 ‘문화강국’에 대한 비전을 분명히 해왔고 현장 예술인들에 대한 심도 있는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했다. 따라서 신정부가 문화를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자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임을 선언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관건은 ‘문화강국’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취해야 할 선결 조치들이다.
국가 예산 대비 문화체육관광 예산은 2%를 넘어본 적이 없다. 2017년 1.42%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2019년부터는 되려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급기야 윤석열 정부 들어 2023년에는 1.06%를 기록하더니 2025년 예산은 1.05%로 최근 10년 동안 가장 낮은 수치를 경신했다. 이는 OECD 평균 이하이며, 글로벌 문화강국들과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수치이다.
예산은 정책집행의 의지를 보이는 또 다른 척도이다. 역대 최저로 떨어진 예산의 여파는 문화예술인들의 창작과 도전의 기회를 무디게 했다. 코로나 시기를 막 벗어나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해야 할 시기였던 콘텐츠 제작 영역은 투자 부족으로 고사 위기에 놓였다.
영화 통계를 보면 코로나 이전 2019년 48편 정도의 영화 제작 편수가 2024년 작년에 16편까지 추락한 상태이다. 투자를 받기 전에 기획을 위한 착수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콘텐츠의 질을 결정할 문화기술에 대한 예산 규모는 R&D 투자 총액은 약 1,062억 원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약 9조 원), 산업통상자원부(약 6조 원)와 비교했을 때 절대적인 격차를 보인다. K-콘텐츠의 상징성과 세계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의 기술 내재화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며, 이는 향후 글로벌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국내 콘텐츠 산업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5.2% 성장, 2023년 기준 154조 원 규모로 확대되었고, 수출은 연 133억 달러로 이차전지를 뛰어넘는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콘텐츠 산업은 문화 수출액 50조 원 달성에 핵심 전략 자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 내재화 미흡으로 인해 해외 플랫폼 의존도는 여전히 높고, 생성형 AI, XR, 메타버스, 전통문화 디지털 전환 등 신기술에 대한 대응력 또한 뒤처지고 있다. 이는 현재 문체부에 문화기술 R&D를 총괄해야 할 전담 부서가 부재하고, 부서별로 콘텐츠, 저작권, 스포츠, 관광 R&D정책이 분산되어 계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수출 역량 강화를 위한 체계적 기술개발과 전략적 수립을 기대하기 어렵다.
문화기술은 콘텐츠 생태계의 근간이 되는 토양이다. 따라서 신정부에 다음과 같이 문화기술 기반 구축을 제안한다.
❶ 문화기술(CT) 집중 육성을 위한 부처 단위의 체계 정비
문체부 내 문화기술 R&D를 체계적으로 기획·관리할 전담 부서(가칭 문화기술과) 신설이 시급하다. 현재 문체부 조직 내에는 문화기술 R&D를 총괄하는 전담 부서가 없어 복잡한 R&D 과정을 일관되게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다. 전문성 있는 전담 조직을 통해 문화기술 R&D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는 해외 선진 문화예술 정부기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성공적인 모델인데, 문화강국으로 손꼽히는 영국의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나 프랑스의 문화부 등은 문화예술 분야의 기술 혁신과 산업 육성을 위한 전문 부서 및 산하 연구기관을 통해 체계적인 R&D 정책을 추진한다. 이들 기관은 정책 기획부터 예산 배분, 성과 관리까지 전반적인 과정을 총괄하며, 이를 통해 혁신적인 콘텐츠 개발과 산업 성장을 견인한다. 중앙부처 내 R&D 전담 부서 신설은 산재한 문화기술 R&D 사업을 통합하고, 관련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강력한 추진 동력이 될 것이다.
❷ 중장기 예산 확대 전략 수립
2025년부터 2030년까지 국가 전체 R&D 예산 대비 2% 이상을 문체부 R&D로 순차적으로 배정하는 중기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증대가 아닌, 문화기술에 대한 국가적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자 실질적인 투자 확대의 시작이 될 것이다.
과거 정부의 R&D 예산 확대가 특정 산업 분야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끈 사례는 분명하다. 1990년대 이후 정부의 반도체 산업 R&D 투자 확대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반도체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초기에는 미미했던 투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기업들의 기술 개발 역량이 강화되었고, 이는 글로벌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로 이어졌다. 최근에도 AI 반도체, 우주항공 등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대한 정부 R&D 예산 증액은 해당 산업의 초격차 기술 확보와 미래 성장을 위한 중요한 마중물이 되고 있다. 이처럼 국가 R&D 예산의 전략적인 확대는 단순히 연구 역량 강화에 그치지 않고, 관련 산업의 구조적 변화와 글로벌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문화기술 분야 역시 이러한 성공 사례를 본받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❸ R&D 기획·관리·사업화를 아우르는 연구관리 전문기관 독립성 마련
R&D 과제 기획에서부터 평가, 사업화까지 전주기를 아우르는 R&D 연구관리 전문기관의 설립 및 기능 확장이 필수적이다. 특히 정책 연구, 데이터 구축, 산업 간 연계, 인력 양성 기능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문화기술 분야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고, 실질적인 연구 성과 창출로 이어지는 기반이 될 것이다.
타 부처 연구 관리 전문기관과 비교를 통해 문체부 연구 관리 전문기관의 한계와 문제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개선해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국연구재단, 산업통상자원부의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 주요 부처의 연구 관리 전문기관들은 대규모 예산과 전문 인력을 바탕으로 과제 기획, 평가, 성과 관리, 사업화 지원 등 전 주기적인 연구 관리 시스템을 운영한다. 반면 문체부의 경우 산업 진흥기관의 역할과 R&D 기획·평가기관의 역할이 혼재되어 있어 예산 규모, 전문성, 독립성 측면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분산된 업무 체계와 제한적인 인력으로는 급변하는 문화기술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혁신적인 R&D 성과를 창출하기 어렵다. 따라서 문체부의 연구 관리 전문기관은 독립적인 지위와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여 타 부처 전문 기관에 준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❹ 지역기반 실증 및 민관 투자 확대
지역 문화산업진흥원 등을 중심으로 실증랩을 지정하고, 청년 창작자 및 로컬 창작기업과 대학이 연계된 기술 이전 및 창업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민간 매칭형 R&D를 확대하여 실질적인 산업화를 유도해야 한다. 지역 기반의 기술 실증과 민간의 참여는 문화기술의 확산과 상용화를 가속화 할 것이다.
문화 관련 산업 투자는 이제 국가 수출의 흑자전환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오늘날의 K-문화산업의 위상을 민간에서 만드는 데 그동안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이제 정부와 국회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과 K-컬쳐의 성공에만 취해있을 것이 아니라, K 문화체육관광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써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산업은 현재 상황에서 우리 국가 경제를 지탱할 마지막 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원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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