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기업들 훼방 놓지 않을 방법부터 고민해야”
혁신과 창의성 발휘에 기업인 출신 장관이 제격
정치인과 관료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대통령이 보호막 되어야
2년 전 방한한 나프탈리 베넷(53) 전(前) 이스라엘 총리는 대뜸 “정치할 사람은 기업부터 운영해보라”라고 말했다. 그는 군에서 제대한 뒤 처음 회사를 차렸다가 실패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정계 입문 직전인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가 정보보안 회사를 창업해 6년 뒤 비싸게 매각했다. 2009~2013년에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스타트업(Start-up)의 CEO(최고경영자)도 맡았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정치인으로서 지녀야 할 통찰력·상상력·실행력을 고루 길렀다고 한다.
베넷 총리는 “국가의 바탕은 경제이고 경제의 바탕은 기업이므로, 정치인이라면 자기 행동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치 한국의 정치인들을 겨냥한 듯, “정치가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절대 안 된다. 정부는 기업들에게 뭘 지원해줄까 생각하기 이전에 훼방 놓지 않을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 규제를 타파하지 않으면 절대 스타트업 강국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1970~1980년대 학창 시절을 운동권으로 보내며 관념적인 사회주의나 김일성 우상숭배에 빠져 데모만 하다가 자기 노력으로 땀 흘리며 돈 벌어본 경험도 거의 없이 국회의원 되고 장관 된 사람이 너무 많은 대한민국이기에 베넷 총리의 말은 잊혀지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의 첫 내각에 기업인 출신이 여럿 들어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을 거쳐 두산에너빌리티 대표를 지낸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 LG AI연구원 초대 원장을 지낸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그리고 네이버 대표를 지낸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그렇다. 또 국무조정실장에는 행시 출신으로 공직을 거쳤다가 잠시 사기업에 몸담았던 윤창렬 LG글로벌전략개발원장,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에는 하정우 네이버 AI혁신센터장이 각각 선임됐다. 역대 정부에서 매번 교수 출신이 25% 정도인 반면, 기업인은 1명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진전이다. 하지만 더욱 늘려야 한다.
흔히 ‘기업인’이라고 부르지만, 형태는 다양하다. 직접 기업을 세운 창업오너, 부모에게 경영권을 물려받은 세습오너, 신입이나 경력으로 입사하여 고위 임원까지 오른 전문경영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참가한 기업인이라면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의사결정을 자주 했을 것이다. 과거 스티븐 로스 타임워너 회장은 “우리 회사에서는 실패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고된다”라고 말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기업인들의 승부 의욕과 도전 정신은 커진다.
그런 기업인을 공직, 특히 장관직에 파격적으로 중용할 이유는 많다. 무엇보다 글로벌 환경이 예전과는 판이하기 때문이다. AI가 이끄는 메가 산업구조의 재편으로 유례없는 경제과학전쟁 시대가 되었다. 급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생각의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AI 시대에는 행정과 경영이 융합되고 ‘관(官) 주도’라는 말이 촌스러워지며 ‘정경유착’이란 비판도 사치스럽게 들린다. 게다가 물불을 가리지 않는 트럼프의 관세 공세는 계속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자면 감독자·조력자·비판자 역할에 익숙한 정치인·관료·학자·언론인·법조인보다는 ‘플레이어’로 뛰어 본 기업인이 아무래도 낫다.
사실 19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관료집단은 엘리트 계층으로 민간기업을 지도했으나, 1990년대 들면서 뒤바뀌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한국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언급처럼, 민간이 정부의 실력을 앞질렀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 주변을 보면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거나,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의 참모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중에도 유능한 인사가 있겠지만, 현란한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미흡하다.
기업인 출신 장관들이 제 역할을 하게 되면 우리 사회에서 죽어가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도 부활할 수 있다. 기업가정신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은 행정규제다. 정부의 온갖 갑질과 규제에 시달려 본 기업인이 장관이 되면 규제를 효과적으로 철폐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업가정신이란 기업들에게 특혜를 주자는 말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USB를 발명한 이스라엘의 벤처 영웅 도브 모란은 “기업가정신과 공산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데, 공산주의는 기업가정신과 독창성을 억압하기 때문”이라며 “기업가정신의 골자는 혁신과 창의성이며, 혁신이란 더 새로운 걸 만들고 창의성은 더 다른 걸 만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괜히”라는 표현은 혁신과 창의성의 적이다. 경찰들은 괜히 범인 잡는데 공권력을 행사했다가 인권탄압 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도둑이나 강도 앞에서도 빌빌거린다. 교사들은 괜히 학생들의 패륜을 훈육하려다가 청소년 학대라는 시비에 휘말릴까 봐 침묵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괜히 열심히 정책 추진했다가 정권 바뀌면 직권남용으로 걸릴까 봐 그저 엎드려 있다. 나라가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면 대통령은 성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업가정신의 확산을 정부가 장려할 필요가 있고 그 중심에 기업인 출신 장관들이 기여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이번에는 네이버와 LG 출신을 중용했으나, 다음에는 인재 풀을 늘리고 경력을 잘 살펴 삼성·SK·현대차나 중견기업들까지 고루 선발하면 좋겠다. 기업인의 공직 진출에 부담을 주는 주식 백지신탁 등의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기업인 출신이 관료사회에 적응하기는 매우 어렵다. 노회한 정치인들과 몸 사리기 달인인 직업 관료들 사이에서 기업인 출신들이 제 역량을 발휘하도록 대통령이 힘을 실어 주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 최홍섭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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