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시선은 때때로 가장 정직하게 사회의 민낯을 비춘다. 또래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에서부터 어른들이 놓쳐버린 돌봄의 사각지대까지 아이들이 놓여 있는 갈등의 사회는 순진무구하지 않다. 자극을 배제하고 서사의 틈을 통해 균열을 드러내는 독립영화 특유의 방식은, 그런 아이들의 내면과 관계를 직시하는 데 적합한 시선이 되어 왔다. 그리고 다시, 그늘진 아이들의 세계를 정면으로 그려낸 작품이 등장했다.
장병기 감독의 신작 '여름이 지나가면'은 부모 없이 방치된 형제, 위계에 길든 또래 집단, 무력하게 반복되는 편견과 배제의 구조를 통해 어른 사회가 남긴 그림자를 아이들의 세계 안에서 끄집어낸다.
보호자가 없는 영문과 영준 형제는 시설에 들어가면 떨어져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를 거부 하고 둘이 살아간다. 동네 어른들은 이 형제들이 찾아오면 밥을 내어주지만 보호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농어촌 전형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전학 온 기준은 그들을 동경하며 자연스럽게 무리에 합류한다. 도둑질을 하고 동급생 돈을 뺏는 등 영문과 형제의 탈선은 생존을 위해서지만 부모라는 울타리가 있는 기준에게는 한 순간 지나가는 바람이자 놀이다.
기준의 어머니는 영문 형제를 문제아로 간주하고 결국 아들을 전학시키며 이 세계를 다시 어른의 잣대로 판단하고 단절해버린다. 영화는 이처럼 어른들로부터 방치와 단절, 동정과 배제를 반복 당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포착했다.
앞서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이 아이들의 갈등과 눈빛 하나하나 속에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반사시켰다.
'우리들'은 '해맑음'이라는 고정된 이미지에서 아이들을 끌어내려, 그들만의 정글을 보여줬다. 주인공 선과 지아는 겉으로는 친구가 되지만, 서로가 건드려선 안 될 열등감의 뿌리를 지니고 있다. 지아에게는 엄마의 부재, 선에게는 가정의 경제적 여건이 트리거다.
관계는 그 미묘한 감정의 충돌로 균열을 맞는다. 선이 지아의 상처를 무심히 건드리고, 지아는 따돌림으로 되갚는다.
작품은 이를 통해 어린이 사이에도 계급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명확히 작동하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윤 감독은 실제 초등학생들이 아파트 브랜드나 동네에 따라 서열을 나누고, 그 구분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장면을 목격한 경험에서 출발해, '구별짓기'가 단지 어른 사회에만 머무는 문제가 아님을 말한다.
'남매의 여름밤'은 여유롭지 않은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늙은 조부모의 병간호와 집안의 유산 문제처럼 흔히 '어른들의 일'로 여겨지는 현실적 갈등을 끌어안는다.
영화는 돌봄 노동과 가족 내 경제적 긴장, 세대 간 책임의 전가까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묵직하게 풀어낸다.
세 작품 모두 보호와 안전 장치 바깥에서 아이들을 스스로 관계를 구성하고 감정을 발산하는 주체로 그렸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상처는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극을 걷어낸 서사로 구축된 이들 영화는,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구조의 단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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