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명 남짓, 독립영화 '장손' 관람
지난 6월 29일 토요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 상상스위트. 작은 상영 공간에선 잔잔한 막걸리 향과 함께 영화 한 편이 시작됐다. 전통주를 마시며 영화를 감상하고, 끝난 뒤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이른바 ‘음주 영화제’가 처음 열린 자리다. 첫 ‘음주 영화제’의 주류는 막걸리였다.
15명 남짓한 관객이 모여 독립영화 '장손'을 함께 본 이날의 행사는, 상영을 넘어 전통과 삶에 대한 경험을 꺼내보는 시간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영화 동아리의 작은 상영회를 연상케 했다.
이번 행사는 우리술 커뮤니티 플랫폼 주담주담과 신촌의 로컬 크리에이터 혼밥로그가 주최·주관하고, 인디그라운드가 상영과 감독 초청을 지원했다.
영화 상영 전에는 두부김치와 함께 준비된 막걸리 한 잔이 조심스럽게 테이블을 돌았다. 이날 준비된 막걸리는 송명섭이 직접 빚은 생(生)막걸리였다. 도수 6도의 송명섭 생막걸리는 독하지 않아 오히려 관객들의 긴장을 풀고, 대화를 이끌기에 적당했다. 테이블에 퍼진 기분 좋은 취기 덕분에, 내부 분위기 온도도 서서히 올라갔다.
맥주 한 잔쯤은 요즘 극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지만, 두부김치와 막걸리를 곁에 두고 영화를 보는 경험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이날의 상영은 그 자체로 특별한 문화적 경험으로 다가왔다.
그 때문인지 15명 남짓 관객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홀로 관객‘이나 결혼한 지 한 달이 됐다는 신혼부부 모두 ’작은 상영회‘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분위기는 조용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영화를 함께 본다는 일종의 연대가, 이미 어느 정도의 공통 감도를 만들어 낸 듯했다.
'장손'은 가족이 모두 모인 제삿날, 장손 성진은 가업으로 이어져 온 두부 공장의 운영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터져 나온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가족 간 갈등이 격화되고, 얽히고설킨 감정과 이해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오정민 감독은, '장손'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 가족에 내재한 구조적 억압과 의무의식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가족 내면의 긴장과 상처를 들여다본 이번 작품은, 전통을 주제로 한 이번 행사와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영화를 매개로 한 진지한 대화에 막걸리가 더해지자, 상영관은 말 그대로 전통과 지금이 만나는 장이 됐다.
우선 상영이 끝난 후 등장한 오정민 감독은 5년 동안 기획된 '장손'의 기획의도와 촬영 과정, 그리고 자신의 경험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관객들에게 전했다. 술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오 감독은 막걸리를 관객들과 나눠 마시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막걸리 잔이 오가고 감독의 솔직한 이야기가 이어지자, 관객들 역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가족사를 꺼내놓았고, 누군가는 전통과의 충돌을 털어놨다. 이야기는 점차 개인적인 고백에서 세대 간 단절, 나아가 우리가 전통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레 번져갔다. 소규모 인원으로 기획된 자리였기에 깊고 다양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현장이었다.
실제 경상도에 거주하며 집안의 장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한 참가자는, 영화 속 성진의 갈등이 "남 얘기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제사를 없애기로 했다는 한 신혼부부는 "우리 세대의 편리를 위해 윗세대의 문화를 단절한 건 아닌지 가끔 고민이 된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장손'은 전통을 둘러싼 선택 앞에서 누구나 흔들릴 수밖에 없는 질문들을 관객 각자의 삶으로 끌어들였고, 영화 이후에도 감정과 대화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행사가 끝난 후에는 오정민 감독의 사인회가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영화도 훌륭했고, 막걸리와 음식도 훌륭했다. 특히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즐거웠다. 전통과 변화에 대해 나눌 수 있어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오정민 감독 또한 "기획이 흥미로웠고, 청년들의 다양한 경험을 들을 수 있어 즐거웠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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