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불안’ 가요계 연습생 등 인력 등에 방향 제시 기대
싸이, 방탄소년단, 에픽하이, 선미, 트와이스, 헤이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제로베이스원, 에스파, 엔믹스, 트리플에스, 엔하이픈, 아홉….
최근 가요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두 작곡가인 이재와 엘 캐피탄이 협업한 아티스트다. 이재는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휩쓴 화제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를 작곡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장했고, 엘 캐피탄은 빅히트 소속의 프로듀서로 오랜 기간 방탄소년단과 함께 곡을 작업하며 글로벌 팬덤까지 보유한 스타 프로듀서다. 이달 초 데뷔 일주일 만에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한 신인 그룹 아홉을 프로듀싱해 화제를 모았다.
이들의 활약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들의 경력 때문이다. 두 작곡가는 공교롭게도 프로듀서가 아닌 '플레이어'로서 케이팝(K-POP) 산업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재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10여년 넘게 연습생으로 지낸 경험이 있고, 엘 캐피탄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아이돌 그룹 히스토리로 무대에서 관객을 만났다.
즉 이들의 성공 사례는 단순한 커리어 전환 뿐 아니라 아이돌 혹은 연습생 출신의 인재가 케이팝 산업에서 성장하고 활약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키스오브라이프의 제작에 참여한 이해인이나 베이비돈크라이를 프로듀싱한 전소연 등도 있겠으나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거나 팀 인지도가 높은 것이 아닌 연습생으로, 혺은 다소 인지도 낮은 그룹의 멤버로 활동했던 이들이 스타 프로듀서로 거듭났다는 것은 보기 드문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현재 가요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진로 불안 상황과 연결된다. 어릴 적부터 학업보다는 대중문화예술인으로 데뷔하기 위해 수년에서 10년 넘게 연습하고 준비해 온 아동청소년들이, 대중적 인지도를 충분히 얻지 못하거나 기획사와의 문제로 활동을 못할 시 일반 청소년들과 다른 진로 불안을 느끼게 된다. 특히 아이돌 그룹 시장은 매년 이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최근 10년간 살펴보면 한해 평균 약 70팀의 아이돌 그룹이 데뷔한다. 팀당 인원을 6명으로만 잡아도, 매년 약 420명이 데뷔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중 주목받는 그룹은 대형기획사 소속 아이돌을 포함해 소수에 그친다. 대략 데뷔 평균 20%만 장기적으로 성공한다고 봤을 때, 56팀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를 10년간 살펴보면 무려 3360명의 데뷔 경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불안한 진로를 걱정해야 한다. 여기에 데뷔도 하지 않은 연습생을 포함해, 각 지역에서 연습생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청소년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측정이 안될 정도다. 매년 아이돌 혹은 연습생 출신들의 진로가 ‘문제’되는 이유다.
이는 업계의 인식 뿐만 아니라 법적 근거로도 확대됐다. 2023년 12월 열린 서울시의회의 제321회 정례회 본회의에서는 '서울시 청소년 문화예술인의 권익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최종 통과됐다. 시의회는 이 조례를 근거로 데뷔에 실패하거나 계약이 만료된 아이돌 연습생을 대상으로 진로상담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예기획사와 아이돌 그룹의 주 활동 지역이 서울인만큼 서울시의회가 본격적으로 움직인 셈이다. 그러나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우려가 제기됐다.
조례 통과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24년 1월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는 해당 조례와 관련해 "기존의 청소년 상담 체계에 관련 상담 비용과 운영비를 추가 할당하는 수준이어서 충분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조례 제정의 목적에 부합하는 실효성을 거둘 수 있도록 향후 사업의 방식이 보완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리고 조례 통과 이후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예산 편성이나 상담 인력 확보, 연계 기관 지정 등 실질적 실행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재와 엘 캐피탄의 사례가 단지 이들의 ‘성공’으로만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가 이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이재와 엘 캐피탄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플레이어에서 프로듀서로 성공한 사례가 업계의 다른 직종, 사례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재와 엘 캐피탄의 행보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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