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피 한 방울까지 쥐어짜는 풍자극 [D:쇼트 시네마(131)]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9.02 11:17  수정 2025.09.02 11:17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흡혈귀 종주(이정주 분)는 건물주로 살아가며 상인들에게 임대료 대신 피를 받는다. 상인들은 어려운 시기에 돈이 아닌 피로 지불하는 상황을 오히려 고맙게 여기며, 매달 종주에게 기꺼이 목을 내어준다.


어느 날, 치킨집에서 임대료(피)를 받으러 간 종주는 단골손님이라는 한 여자(한지원 분)를 발견하고 첫눈에 반한다. 종주는 뒤를 쫓아 여자가 헌혈센터 간호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헌혈을 핑계로 다시 여자를 보기 위해 변장과 위조 신분증까지 동원한다.


그러나 간호사를 향한 집착은 곧 상인들을 위협하는 탐욕으로 이어진다. 종주는 임대료를 받은 지 한 달도 안 돼 다시 상인들을 찾아가 피를 요구하고, 급기야 치킨집 딸의 피까지 탐하게 된다.


그렇게 종주는 간호사에게 자신의 피를 아낌없이 내어주고, 간호사 역시 헌혈 받은 피를 빠는 흡혈귀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간호사 역의 한지원이 보여주는 무심한 얼굴이 이 반전을 더욱 서늘하게 만든다.


제목 '혈세'는 두 겹의 의미를 지닌다. 문자 그대로는 '피의 세금'이자, 동시에 현실의 혈세(血稅, 국민이 피땀 흘려 내는 세금)와 겹쳐지면서, 약자를 착취하는 구조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혈세는 B급 호러의 장르적 쾌감과 사회적 은유를 교묘하게 결합한다. 흡혈귀라는 캐릭터를 통해 건물주와 세입자의 관계, 세금과 착취 구조 같은 한국 사회의 뼈아픈 현실을 비트는 동시에, 마지막에 등장하는 '헌혈하는 흡혈귀'라는 블랙코미디적 반전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짧지만 굵게, 제목처럼 씁쓸한 맛을 오래 남기는 작품이다.


'혈세'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의 김민하 감독 단편적이다. 재기발랄한 호러 감각이 두 작품의 결을 잇는다. 김 감독은 일상적 공간에 기괴한 상상력을 끼워넣는 솜씨가 탁월하며, 단편임에도 불구 사회적 은유와 장르적 쾌감을 함께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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