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해…자사주 소각은 어쩔 수 없는 선택? [더더센 3차 상법 온다②]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입력 2025.09.03 06:00  수정 2025.09.03 09:52

자사주 소각 기업 23년 99개사 → 24년 177개사

올해 이미 8월까지 전년도 수치 상회한 206개사

기업들 "주주 가치 제고" 표면적 이유 내세우지만

정책 시행 혼란 대비 선제적 대응 해석 지배적

정치권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최근 국내 주요 대기업 지주사들이 잇따라 자사주 소각에 나서고 있다. ⓒ데일리안 AI 이미지 삽화

최근 국내 주요 대기업 지주사들이 잇따라 자사주 소각에 나서고 있다. 정치권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자, 자사주를 다량 보유한 지주사들이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2일 대신증권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올해 2월 자사주 소각 기업 수가 50개사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를 보였으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7월 들어 다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월별로는 ▲1월 10개사 ▲2월 50개사 ▲3월 27개사 ▲4월 21개사 ▲5월 27개사 ▲6월 12개사 ▲7월 31개사 ▲8월 28개사였다.


연도별로 추이도 가파르다. 자사주 소각 기업은 2023년 99개사에서 2024년 177개사로 증가했고, 올해는 8월까지 이미 206개사가 자사주 소각을 단행하며 전년도 전체 수치를 넘어섰다.


지난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자사주 소각 규모가 큰 기업은 HMM으로, 그 규모는 8180만주(2조1432억원)다. 신한지주는 1154만주(8000억원), KB금융 572만주(6600억원), 메리츠금융지주 479만주(5514억원), 네이버 158만주(3684억원), 기아 388만주(3452억원) 등 순으로 규모가 컸다.


㈜LG도 지난달 28일 2500억원 상당의 자사주 302만9580주를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 출범 전인 올해 2월엔 ㈜두산도 36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경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2024년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 이후 자사주 소각 기업 수가 급증했으며, 올해 8월까지 이미 전년도 전체 기업 수를 상회했다"며 "올해는 2월에 소각 기업 수가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를 보였으나 상법 개정이 통과된 7월에 다시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보통주 기준 자사주 소각 비율이 높은 상위 5개 기업은 고려아연(19.7%), 모토닉(15.0%), 매커스(12.4%), 남양유업(11.7%), 인터로조(11.1%)"라고 설명했다.


자사주 소각은 발행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끌어올리고 단기적으로는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HMM과 LG의 자사주 소각 발표 이후 주가는 단기간 반등세를 보였다. 주주가치 제고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기업들이 내세우는 공식적인 이유도 대체로 주주 가치 제고다. 국내 증시가 저평가된 상황에서 주주 친화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상장사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해 주주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고 공언했는데, 기업의 자사주 소각도 이에 발맞춘 행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선 '외부 압박'이 소각 러시의 근본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9월 정기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3차 상법 개정안은 ▲자사주 취득 즉시 또는 최대 1년 이내 소각 의무화 ▲기존 보유 자사주는 법 시행 6개월 또는 최대 5년 내 소각 의무화가 골자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법제화되면 기업의 자율성이 사라지고 소각이 강제된다. 차라리 지금 자발적으로 움직여 '주주 친화 기업' 이미지를 쌓는 편이 낫다고 보는 것"이라며 "울며 겨자 먹기식 결정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신현용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정책 시행에 따른 혼란에 대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자사주 비중을 낮추는 움직임이 확인된다"며 "지난해 밸류업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자사주 매입, 소각이 확대되됐다"고 분석했다. 누적 자사주 소각이 크게 늘고 있으며 기취득 자사주를 대상으로한 교환사채 발행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주요 대기업 지주사 중 자사주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은 롯데지주로, 그 비중은 27.5%에 달한다. SK㈜(24.8%), 두산(17.9%), HD현대(10.5%) 등이 10%가 넘는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자사주 처분이라는 선택지가 사라질 경우 자사주 매입은 자본의 감소에서 부채비율 상승으로 연결되며 기업의 재무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매입, 소각 적극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어떤 기업도 자본 감소 경우 외에는 자사주를 취득하지 않아 자사주 제도 폐지나 다름없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현행 상법상 임직원 스톡옵션과 RSU(양도제한주식) 재원으로 활용, 이익배당 재원, 교환사채 교환, 상환사채 상환, 회사의 합병·분할 합병·주식교환 등 다양한 자사주 활용 방안도 모두 사라진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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