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LG 사태, 남일 아니다"…삼성·SK도 美 비자 딜레마 심화

정인혁 기자 (jinh@dailian.co.kr)

입력 2025.09.12 11:26  수정 2025.09.12 12:34

韓 근로자 300여명 12일 오후 3시30분경 도착

지난 4일 이민세관단속국 체포 1주일만 풀려나

초유 사태 일단락…美 투자 기업들 긴장감 커져

기업 능력 밖의 일…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 시급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미국 이민 당국에 구금됐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근로자 300여명이 12일 오후 3시 30분경 한국에 도착한다. 초유의 사태는 일단락이 됐지만, 미국에 수십조 원을 투자하며 공장을 짓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 사이에서는 비자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게 '비자 리스크'의 현실성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조지아주에서 합작해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은 초기 설비 구축 단계로, 다수의 한국 엔지니어와 숙련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


체포·구금된 한국인들은 단기 상용비자(B1·B2) 또는 전자여행허가제(ESTA)로 입국해 초기 설비 관리·감독을 해왔지만, 미국 당국은 이들이 비자 범위를 넘어선 업무를 수행했다며 집단 구금에 나섰다.


미국에 진출해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결국 이 문제는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선 일이다. 기업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비자를 발급 받고 나갔는데, 확장된 법 해석으로 이같은 문제가 벌어진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아무리 준비를 잘해둔 자칫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시그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배터리 업계에서 시작된 이번 사태는 반도체 업계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약 25조원을 투입해 첨단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내년 하반기 본격 가동을 목표로 초기 장비 반입과 셋업 작업이 진행 중인데,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한국 엔지니어와 장비사 기술 인력이 필수적으로 파견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 이번에 미국에서 겪은 상황과 유사하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파예트에 5조40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을 위한 반도체 후공정 공장 건설을 준비 중이다. HBM은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제품으로, 초기 수율 확보를 위해선 한국 본사의 핵심 기술진이 현장에 제때 투입돼야 한다.


반도체 업계는 이번 사태가 예기치 못한 특수한 상황인 만큼 미국 비자 및 고용 정책들을 재차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엄중히 여기고, 다각도로 직원들의 비자를 살펴보며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선은 정부의 대응으로 향한다. 업계 안팎에선 이번 사태를 개별 기업의 능력 밖의 일로 평가하면서 한국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2012년부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지만, 호주·싱가포르 등과 달리 '전문직 비자(H-1B) 쿼터'와 같은 구체적 조항을 확보하지 못했다.


H-1B 비자는 연간 발급량이 8만5000건으로 제한되며 쿼터를 확보하지 못한 국가의 경우 추첨 방식으로 비자가 배정돼 불확실성이 크다. 이 때문에 우리 기업들은 그간 단기 상용 비자인 B1·B2나 ESTA을 통해 '우회적인 방식'으로 인력을 파견해 왔다.


이같은 관행을 깨고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전문 인력 취업비자인 E-4 신설 또는 전문 직종 외국인을 위한 H-1B 비자의 한국인 쿼터(할당량) 확보 등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한미 양국이 합의한 관세·통상 협상 결과로, 향후 3500억 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진행해야 하는 만큼 한국 기업 전문 인력의 비자 문제 해결은 더욱 시급한 상황이 됐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이번 문제는 기업도, 정부도 미리 예측이 불가한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기업의 손을 떠난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재발 방지를 위해 미국과의 협상을 조속히 진행하고, 장기적인 비자 정책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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