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문제에 인력 운용 차질 불가피…기업들 "신속 해결해야"
관세 부담에 자동차 업계 타격 두드러져…"日과 불리한 경쟁"
대미 투자 위험 요인 우려 확산하며 현지 전략 점검 분위기
최근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수백 명이 비자 문제로 미 당국에 의해 집단 체포·구금된 사건 이후, 국내 기업들의 대미 투자 기조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관세 장벽에 더해 비자 문제까지 발생하면서 불확실성이 한층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 투자가 기대했던 성과보다는 위험 요인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며, 주요 기업들이 현지 전략을 다시 점검하는 분위기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 현지에서 공장을 신·증설하고 있는 기업은 20여개사에 달한다. 이번 미국 조지아 배터리 공장 사태와 연관돼 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삼성전자와 삼성SDI, SK하이닉스, SK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한화큐셀 등이다.
당장 이들의 발목을 잡는 건 비자 문제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필수 업무 외 출장을 중단하고 현지 체류 직원들에게 즉시 귀국 또는 숙소 대기를 지시했다. 현대차 역시 필수가 아닐 경우 미국 출장을 보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최근 한달 이상 미국 출장을 나갈 경우 주재원(L1) 비자를 받도록 공지했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상용(B1)을 활용해 업무를 이어온 관행이 이번 단속 강화로 사실상 차단되면서 인력 운용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지난 11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자동차 행사에서 "이번 일로 최소한 2~3개월 공사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해당 공장은 내년에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를 양산하는 게 목표였으나, 공장 가동 시점이 내년 상반기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같은 상황은 정부 차원의 제도적 대응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문 인력 취업비자(E-4) 신설이나 H-1B 쿼터 확대 등 실질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비자 문제는 개별 기업 사안으로 치부돼 왔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제도 개선 마련에 나설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2년부터 연 1만5000개 발급 규모의 E4 비자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한국 동반자법'(PWKA) 입법을 위해 미국 정부·의회를 설득해오고 있다. H-1B 비자의 한국인 쿼터 확보, 발급 절차 간소화 등 제도적 보완도 요구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태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자 시스템 개선과 새로운 비자 유형 신설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미 국내법 개정을 통해 한국인 비자 쿼터를 만들거나 새 비자를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문제 역시 부담이다. 미국은 지난 7월 한국에 대한 국별 관세 및 자동차 관세를 15%로 인하하고 반도체·의약품 등 품목별 관세에 대해 최혜국대우를 약속했지만, 후속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특히 자동차 업계의 타격이 두드러진다. 16일부터 일본산 차량에는 15% 관세가 적용되는 반면 한국산 차량에는 여전히 25%가 부과되고 있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완성차업체가 미국 하이브리드차(HEV)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려는 상황에서, 관세율을 낮추는데 실패해 이를 고스란히 판매 가격에 반영한다면, 현대차·기아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 기아 스포티지 하이브리드는 3만290달러(약 4211만원)인데, 도요타 라브4 하이브리드는 3만2850달러(약 4567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각각 25%, 15%의 관세를 반영해 판매 가격을 추산한다면, 스포티지 가격은 3만7863달러, 라보4는 3만7778달러로 가격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더욱이 현대차그룹은 HEV 물량 대부분을 국내에서 수출하고 있어 관세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15%로 관세율이 떨어지고, 우리는 (관세 인하가)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까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될 것"이라며 "국내 기업의 미국 시장 내에서의 수익성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일본은 이번 기회에 시장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는 타이밍일 수 있다"며 "우리는 거기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원동력을 잃은 셈"이라고 말했다.
여러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탓에 일부 기업은 멕시코·캐나다 등 대체 거점으로 투자지를 다변화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지 변경은 우리에게 너무 위험한 얘기"라며 "우리 같은 경우 주요 수출지가 미국인데 미국을 배제하고 간다면 괘씸죄로 더 안 좋은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으로서는 정부가 비자·관세 문제 해결을 위해 빨리 움직이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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