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전격 사임하는 바람에 프랑스 정국이 걷잡을 수 없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전날 내각을 발표한 지 하루 만이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대통령실(엘리제궁)은 6일(현지시간) 마크롱 대통령이 르코르뉘 총리와 만난 후 사임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2년 새 무려 다섯 번째 총리가 사임, 이들의 임기는 평균 6개월에 불과하다.
그의 사임의 직접적인 원인은 발표된 내각이 기존 프랑수아 바이루 내각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판박이 내각’이라는 비판이 좌우 양진영에서 터져 나오면서 정국 수습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프랑스 정치권은 공공 지출과 부채 문제로 극심한 대립을 빚고 있다. 현재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14%에 달한다. 유럽연합(EU)이 허용하는 비율인 60%의 2배에 가깝고, EU 회원국 중 그리스, 이탈리아 다음으로 높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GDP의 5.8%로 유로존 상한선인 3%를 크게 웃돌았다. 높은 수준의 복지(연금과 건강보험, 실업수당 등)를 유지하는 데 막대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복지 지출은 줄이기 힘들고 세수 구조는 악화하면서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 신용등급까지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여권은 하원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여소야대’ 상황 아래 놓여 있는 까닭에 운신의 폭이 매우 좁다. 이 때문에 마크롱 대통령이 내세우는 긴축 예산안이나 연금개혁 같은 주요 법안은 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통과가 어렵고, 총리는 계속해서 의회 불신임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바이루 총리와 그 전임인 바르니에 총리 역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긴축 예산안을 내놓았다가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고 불신임으로 물러났다. 이 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발탁된 르코르뉘 총리는 보수당(공화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마크롱 대통령의 측근이 된 인물이다.
지방자치부와 해외영토부, 국방부 장관 등을 거치며 마크롱 정부에서 단 한 번도 경질되지 않았을 만큼 신뢰가 두터웠다. 특히 외교적 혼선을 수습하는 ‘막후 해결사’ 역할을 수행해온 덕분에 발탁됐지만, 언론 노출을 피하고 사생활을 철저히 숨기는 성향이 있다.
그는 취임 후에도 언론 접촉을 극도로 꺼리며 ‘필요할 때만 말한다’는 태도를 고수했고, 긴축에 반대하는 극좌와 극우 양쪽 진영의 거센 비판과 시위 예고 속에 끝내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아 물러났다.
유럽연합(EU)이 프랑스에 재정 적자를 GDP의 3%로 줄이라고 권고하면서 총리들이 긴축 예산안을 내놓았으나, 좌우 양극단이 ‘긴축 반대’를 정치적 무기로 삼으면서 총리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정치권 일각에서는 사실상의 국가 부도인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르코르뉘 총리가 물러나면서 마크롱 대통령은 이제 또다시 새 총리를 지명해야 한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그는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야당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인물을 지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해 있다.
일각에서는 야권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극좌파가 요구하는 인물을 총리로 지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마크롱의 국정 철학과 배치되는 만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이 또다시 측근 인사를 지명할 시 프랑스는 더욱 심각한 정치적 혼란 상태에 빠질 수 있다. AP통신은 “불과 전날 밤에 임명된 장관들이 임시 장관이 되는 기이한 상황이 만들어졌다”며 “임시 장관은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만 그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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