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선 술도 안 돈다”…내수 침체에 주류업계 ‘탈한국’ 가속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5.10.31 07:21  수정 2025.10.31 07:21

내수 부진에 지역 도매 유통망 붕괴

외식 침체·재고 누적, 지방 도매사 생존 위기

제조사, 지방 마케팅 중단하고 수도권 집중

연말 특수도 ‘불투명’…성장 돌파구 해외로

서울 시내 음식점에 주류 가격이 게시돼 있다.ⓒ뉴시스

국내 주류 소비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지역 도매업체들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경기 둔화로 외식 수요가 줄고, 지방일수록 주류 회전율이 떨어지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면서 유통망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주류 제조사들도 지방 시장을 겨냥한 별도 마케팅을 거의 진행하지 않고, 업계 전반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통상 호프집, 식당 등 소매점 주류매출의 급감은 주류 도매사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이는 또 다시 제조사의 어려움으로 직결되는 악순환 구조를 갖는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8일 지역주류도매업협회는 국민의힘 서일준 의원, 한국지속경영연구원과 함께 이날 오후 '지역주류유통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고 지역 균형발전 전략과 지역경제 상생을 위한 정책 대안을 논의했다.


토론자들은 주류유통의 권역화 정책 도입을 통한 지역 도매업체의 자생력과 유통 균형발전, 주류 분야 정부 규제 필요성 등을 언급했다. 국세인 주세를 지방세로 전환해 지방재정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역 도매사들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경기침체에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5월 내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1%대로 낮춰 잡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5개월 연속 경기 하방압력을 예고하며 국내 경기가 구조적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기서 말하는 잠재성장률은 한 국가가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 수준으로, 경제의 기초 체력을 뜻한다. 이 지표가 1%대까지 하락했다는 것은 한국 경제의 장기 성장 잠재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식당에서 시민들이 술잔을 부딪히고 있다.ⓒ뉴시스

외식업계는 자영업 생태계와 한국경제의 큰 축을 이루는 주인공이다. 수많은 식당과 카페가 골목마다 자리 잡아 식재료를 소비하고 유통망을 움직인다. 사람을 고용하고, 일상 소비의 출발점이 되며 경제의 실핏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체가 흔들리고 있다. 해마다 높아지는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등 인건비 부담은 가중되고, 경기 불안까지 겹치며 손님들의 발길도 눈에 띄게 줄었다. 정책과 제도 역시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방 도매업계는 “술이 안 돈다”는 말이 현실이 됐다고 호소한다.


외식업소 주문이 줄며 도매상 재고가 쌓이고, 운송비와 보관비 부담까지 겹치는 구조다. 수도권 대비 주류 회전율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곳도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자영업자의 고난은 곧바로 주류 도매사의 어려움으로 연결되고 있다.


소비자와의 접점이 높은 호프집 등 주류시장 전반이 침체되면서 거래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유통 순환이 어려워지면서 일부 지방 주류 도매사는 제조사에 대금 납부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제조사들도 이런 구조적 침체를 타개하기 위한 지방 마케팅을 거의 진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 주류사들의 시음회·프로모션 등 마케팅 활동은 대부분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지역 도매업체들은 판매부진에 대응할 여력조차 잃은 상황이다.


다만 제조사들 역시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후 회식 문화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건강한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음주 빈도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고물가와 고금리로 가처분소득이 감소한 것도 주류 소비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주류업계는 내수 한계 속에서 해외로 방향을 틀고 있다.


주요 업체들은 일본·미국·동남아 시장으로 수출을 확대하며, 현지 맞춤형 제품과 마케팅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연말 마케팅을 통해 매출을 올리면서 이익도 확대할 기대감을 키웠으나 올해는 이마저도 기대가 낮은 상황이다.


오비맥주는 최근 수출 전용 소주 브랜드 ‘건배짠’을 수출하며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다. 건배짠의 1차 수출 대상 국가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캐나다 등 4개국으로 과일소주 5종이 주력이다.


하이트진로는 수출 통합 브랜드 ‘진로’로 현재 86개국에 진출해 있다. 오는 2030년까지 연간 해외 소주 매출 5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한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베트남에 첫 해외 생산기지를 건설 중이다.


롯데칠성음료도 해외 매출 비중을 지난해 37%에서 오는 2028년까지 45%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대표 수출 제품인 과일소주 수출액은 지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간 연평균 20%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비심리위축과 음주 트렌드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프로모션 및 마케팅 활동과 세분화된 소비자 니즈를 반영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내수 시장의 활력을 도모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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