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십여 년 동안 연재를 이어왔다. 마감 시간에 쫓길 때면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보람도 컸다. 한 번의 펑크도 없었기에 나만의 자부심이었다. 요즘 들어 문득, 퍼내기만 한 우물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문장이 예전처럼 흘러나오지 않고, 단어 하나를 붙잡고 맴도는 날이 잦아졌다.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라는 불안이 어둑한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어느 퇴직 부부의 신나는 전국 여행 연재기사 ⓒ
33년간 다닌 직장에서 퇴직하던 날, 마음 한편이 홀가분했지만, 매일 출근하던 습관이 사라지자 세상과의 연결선이 끊긴 듯 공허하기도 했다. 맞벌이하던 아내도 비슷한 시기에 퇴직하면서 둘만 남은 긴 시간이 낯설었다. 막 육십을 넘긴 나이인데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제멋대로 찾아왔다 사라지는 바람결처럼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어 아내와 함께 자동차로 한 달간 전국을 돌았다. 일정도 목적지도 얽매임 없이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다녔다. 바다와 산, 들판을 지나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보며 삶의 다음 장을 찾고자 했다. 동해안 고성에서 남해안과 서해안을 거처 돌아왔다. 그해 겨울에는 제주도에서 한 달을 보냈다. 제2 인생행로가 보일 줄 알았는데 떠날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여행길의 피곤함 속에서도 매일 노트북에 여행일지를 썼다.
부부가 함께 떠나는 전국 자동차 여행책 소개 기사 ⓒ
그 무렵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어느 퇴직 부부의 신나는 전국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자는 것이었다. 2016년 가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됐던 글이 ≪부부가 함께 떠나는 전국 자동차 여행≫이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인터뷰와 책의 내용이 언론에 소개되자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행운이었다. 처음으로 ‘나도 글을 쓸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삼 년 후 중앙일보에 「조남대의 예순에 떠나는 배낭여행」이라는 제목의 동남아 한 달 여행기에 이어, 「조남대의 은퇴일기」를 격주로 연재하며 본격적인 글쓰기 인생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데일리안’에 같은 제목으로 85회째 이어오고 있다.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가 인생의 다른 문을 열어주었고, 그 안에서 글로 사는 기쁨을 배웠다. 이제 글쓰기는 또 다른 삶이 되었다.
예순에 떠나는 배낭여행 기사 ⓒ
은퇴 후 여행과 문학 활동, 손주 돌보기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수필로 쓰고 있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러나 세상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격려와 공감의 댓글도 있었지만, 근거 없는 비난이나 조롱도 적지 않았다. ‘왜 이런 말을 해야 할까’하는 생각에 서운했다. 유명인들이 악성 댓글로 인해 마음 아파하거나 심지어는 자살하기도 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칭찬과 비난 모두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독자의 쓴소리도 관심의 한 부분이라 받아들였더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 사회가 칭찬보다는 남을 비난하고 시기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글을 통해 세상과 마주하며 웃고 울었다. 그 속에서 더 단단해졌고, 여전히 글을 쓰는 일에서 마음의 물결이 잔잔해지는 순간을 맞는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쓰고 있는 모습 ⓒ
오랫동안 연재를 하다 보니 글쓰기가 생활화되어 어디를 가나 노트북이 든 배낭을 메고 다닌다. 그 무게는 벗처럼 익숙하다. 약속 시각보다 일찍 도착하면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자판을 두드린다. 잔잔한 음악과 사람들의 대화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홀로 작은 우주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글이 막히면 햇살 스치는 창밖을 바라본다. 운 좋게 옆자리의 대화 한 토막이 글의 씨앗이 되어 단어들이 이어지고, 손끝에서 문장이 다시 숨 쉰다. 젊은이들 곁에 앉아 있으면 그들의 웃음과 열정이 안으로 스며들어 굳어 있던 감각을 깨운다. 생동감 있는 글에 손가락은 신이 난다. 카페는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영감의 온실이자 사색의 방이다. 오늘도 따뜻한 커피 향을 벗 삼아, 하루의 이야기를 천천히 펼쳐 놓는다.
85회째 이어가고 있는 「조남대의 은퇴일기」 ⓒ
연재를 시작한 지 어느덧 십 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글을 쓰는 일이 설렘이었다. 어느 날 문득, 글이 예전처럼 부드럽게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음이 마르고, 생각이 비어가자 원고 앞에서 한참을 맴돌기만 하고, 손끝은 움직일 것 같으면서도 멈춰버린다. 돌이켜보니 지난 시간 동안 ‘쓰는 일’에만 지나치게 몰두했던 것 같다. 우물을 쉬지 않고 퍼 올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바닥이 드러나고, 흙빛 물이 퍼 올려질 것이다. 그동안 유입되는 것은 거의 없었는데, 퍼 올리는 일에만 집중해 왔다. 글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읽고 관찰하고, 마음 한곳을 천천히 적셔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 기반을 채우는 일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다.
퍼내기만 하여 말라가는 우물 ⓒ
최근 들어 책을 다시 자주 들고 있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 글자들이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예전보다 깊게 다가온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이 시간을 얼마나 오래 비워두었는가’ 하는 자책이 따라오면서도, 동시에 ‘다시 채울 수 있다’라는 희망이 피어난다. 선배 문인들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말했던 이유도 이제야 실감한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이 셋이 균형을 이루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는 진리가 뒤늦게 마음에 와닿는다. 어떤 작가는 글이 나오지 않는다며 연필을 내려놓고, 어떤 이는 절필을 선언하기도 한다. 빈 우물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것은 맑은 물이 아니라, 깊은 갈증과 침묵뿐일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채워 넣을 때다. 책 한 권의 문장, 길을 걷다 스치는 바람, 누군가와 나눈 짧은 대화, 오래된 기억 한 조각들이 우물을 다시 채우는 일일이 아닐까.
조남대의 은퇴일기 ⓒ
퇴직 후 10년, 이제 “은퇴일기”는 내 일상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글쓰기는 새로운 직장이자 벗이며, 때로는 삶의 스승이다. 문장이 막힐 때면 괴롭고,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면 텅 빈 우물 앞에 선 듯하지만, 여전히 글을 쓴다는 사실이 내 삶의 중심을 단단히 붙들어 준다. 독서와 사색으로 마음을 채우고 다시 세상을 향해 써 내려가야겠다. 비워진 우물을 채우듯, 제2의 인생 또한 쉼 없는 노력이 있어야 맑은 물이 솟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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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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