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꿀보직' 아닌 '고생길'…책임 막중한 자리
고연봉 노린 지원자 거르고 '잘 해낼' 인재 찾아야
KT 사옥 전경. ⓒKT
33대 1. 공개모집 절차에서 흔히 보기 힘든 경쟁률이다. 단 한 명을 뽑는데 무려 33명이 몰렸다. 지원자들이 들고 온 이력서 역시 어마무시하다.
어떤 공모가 됐든 지원자가 많이 몰리는 것은 모집하는 쪽에 좋은 일이다. 그만큼 적임자를 고를 선택지가 넓다는 얘기니.
하지만 책임이 막중한 자리에 오로지 고연봉과 처우, 사회적 지위 등 잿밥에만 눈이 멀어 로또 분양에 청약 넣듯이 ‘일단 지원하고 보자’는 식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3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꿀보직’은 다름 아닌 KT CEO(최고경영자) 자리다. 2023년 공모 때는 이 숫자가 40대 1이었다.
현직 CEO인 김영섭 대표의 지난해 연봉은 9억원에 달했다. 전임자인 구현모 전 대표는 임기 마지막 해 급여와 상여로만 11억원을 넘게 받았었다. 19억여원에 달하는 퇴직금까지 포함하면 총 30억원을 넘지만, 여기에는 CEO 재직 기간 뿐 아니라 14년에 달하는 구 전 태표의 임원 근속기간이 모두 포함돼 있으니 이 부분은 논외로 치자.
비록 통신 3사 중 가장 박하다고는 하지만, 평균 10억원에 달하는 연봉은 재벌가의 일원이 아닌 일반 샐러리맨에게는 꿈의 경지다. 군침이 흐를 만한 자리긴 하지만 군침을 흘리는 자가 지원해서는 안 될 자리이기도 하다.
“KT의 역사도, 문화도, 기간통신사업자의 역할과 책임도 모르는 분들은 참여를 자제해 달라. KT 대표를 ‘좋은 일자리’이라고 생각해 응모하는 분들 역시 자격이 없다.”
차기 대표 공모와 관련해 구현모 KT 전 대표가 내놓은 입장이다. 본인도 지원을 했다면 ‘아전인수’로 치부됐겠지만, 그는 “전임자가 나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모 불참을 못 박아 본인의 발언에 객관성을 더했다.
1987년 KT에 입사해 약 36년간 회사의 역사와 함께 한 그의 발언은 단순히 ‘집 떠난 OB의 훈수 놓기’로 듣고 넘길 일이 아니다. 공기업 시절부터 민영화를 거치며 소유분산기업이 된 이후 CEO 선임 과정의 난맥상을 KT 내부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자신이 몸담은 일터의 수장 자리가 ‘고연봉 꿀보직’ 취급을 받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리품인 양 뺏고 뺏기는 상황이 ‘정통 KT맨’의 입장에서 달가웠을 리 없다. 지금은 외부인의 입장이지만, 새 CEO 공모 절차가 시작되고 여기저기서 ‘돈 냄새’를 맡고 꼬여 드는 구태가 반복된다는 소리가 나오니 열불이 뻗쳐 펜을 들었으리라.
KT CEO 공모절차는 사외이사 8명이 참여하는 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주도한다. 33명의 지원자를 놓고 16명, 8명, 4명 순으로 후보군을 압축한 뒤 내달 중순 최종 1인을 선정하는 스케줄이 짜여 있다.
KT가 제시한 후보 자격은 ▲기업경영 경험과 전문지식 ▲이해관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역량 ▲글로벌 시각과 리더십 역량 ▲관련 산업·시장·기술에 대한 전문성 등이다.
추천위원회가 ‘꿀보직’을 노리고 뛰어든 지원자들을 잘 걸러 내고 이런 조건을 다 갖춘 인물을 고를 수 있을지 관심이다. 혹여 그런 인물을 골라 놨더니 ‘그런 좋은 자리의 주인을 왜 니들 맘대로 정하느냐’는 외부의 압력이 가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국내 통신업계를 이끄는 한 축이자, 재계 13위 대기업이며, 기간통신사업자인 KT의 수장을 뽑는 일이다. 부디 ‘그 자리가 탐나는 사람’보다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꿀을 빠는’게 아닌 ‘고생문을 여는’ 마음으로 새로운 KT 수장의 자리에 앉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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