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대응서 사전 예방으로 감독 철학 전환 선언
제조 단계 책임 강화·이해도 기준 도입…현장 규칙 변화
업계 “방향은 공감, 실제론 제재 강화로 작동할 수도”
금융감독원은 22일 ‘금융소비자보호 개선 로드맵’을 통해 감독 철학의 전환을 공식화했다. 앞서 지난 9월 29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임직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한 임직원 결의대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금융감독원이 금융소비자보호 감독 체계를 사후 제재 중심에서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로드맵을 내놨다.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뒤 분쟁조정이나 제재에 나서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금융상품의 설계·판매 단계에서 위험 요인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금융권 내부에서는 이번 로드맵이 아직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만큼, 실제 집행 과정에서는 사전 예방보다는 보다 강력하고 엄정한 제재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22일 ‘금융소비자보호 개선 로드맵’을 통해 감독 철학의 전환을 공식화했다.
소비자 민원이나 사고 발생 이후 대응에 집중해왔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상품 출시 이전부터 리스크를 식별·관리하는 사전예방적 소비자보호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상품 설계·제조 단계부터 판매, 사후관리까지 금융상품 전 생애주기에 걸쳐 감독 기준을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로드맵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책임 구조의 재배치다.
그동안 불완전판매 책임이 주로 판매 창구에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금융상품을 설계·제조한 주체에게도 핵심 위험을 정의·평가하고 이를 설명서에 명시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상품위원회 기능 강화와 제조·판매사 간 교차 검증 체계 도입을 통해 고위험 상품이 구조적으로 걸러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판매 현장에 적용되는 규칙도 바뀐다. 감독 기준은 ‘설명을 했는지’에서 ‘소비자가 실제로 이해했는지’로 이동한다.
상품 유형별 설명의무를 세분화하고, 약관·설명서상 위험 표시 방식도 표준화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 이해도 평가를 통해 형식적인 설명이나 서명 위주의 판매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지난 9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한 임직원 결의대회에서 결의문 선서를 하고 있다.ⓒ뉴시스
다만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실제로는 ‘사전 차단’보다는 ‘사후 책임 강화’로 작동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사전 예방 중심의 감독 전환이라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사전 심사가 강화될수록 구조가 복잡하거나 혁신적인 상품은 출시까지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시장 전반의 상품 다양성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제조 단계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는 결국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금융회사에 더 무거운 책임을 묻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며 “사전 예방을 강조하지만, 실무에서는 제재 강도가 더 세질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전했다.
특히 ‘소비자가 실제로 이해했는지’를 감독 기준으로 삼겠다는 방침을 두고는 기준의 모호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해 여부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분쟁 발생 시 책임이 금융회사로 일방적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결국 이번 로드맵이 선언에 그칠지, 아니면 실질적인 감독 방식 변화로 이어질지는 향후 구체적인 후속 대책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사전 심사의 범위와 방식, 책임 부과 기준, 제재 수단 등이 어떻게 설계될지에 따라 ‘사전 예방’이 제도적으로 구현될지, 아니면 ‘강력한 제재’로 체감될지가 갈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방향만 제시된 단계로, 관건은 세부 기준과 집행 방식”이라며 “소비자 보호 강화라는 목표와 금융시장 역동성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향후 감독 정책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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