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초호황 뒤에 드리운 그림자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1.15 07:30  수정 2026.01.15 07:30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 최대 171조원 예상되는 반도체 초호황

하지만 환율이 다시 1480원대 턱밑까지 상승하면서 외환 시장 위기

정부는 확장 재정 지양하고 파격적인 규제 완화로 원화 가치 높여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월22일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내 첨단 복합 반도체 연구개발 센터인 NRD-K 클린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 삼성전자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마츠시다 고노스케는 종종 “사람들은 맑은 날이 조금만 계속되면 비 오는 날을 잊어버리기 일쑤다”라고 경고했다. 요즘 반도체 초(超)호황에 취해 있는 대한민국 수출과 증시(證市)를 보면서 생각나는 말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급등하자 ‘FOMO(Fear Of Missing Out · 자신만이 기회를 놓쳤거나 소외되었을까 두려워하는 심리)’라는 용어가 대중화될 정도로 모두 놀라고 부러워한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20조원이나 되고 올해는 더 좋단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올해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를 최대 171조원으로 보고 있다. 과거 반도체 호황기였던 2018년의 연간 영업이익을 2~3배 웃도는 수치다. SK하이닉스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D램이나 낸드플래시 같은 레거시(범용) 제품은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고, AI 시대에 핵심 부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도 또 다른 대박을 준비하고 있다. 가격이 몇 배가 올라도 외국 IT 업체들이 얼른 팔라고 구걸할 정도가 되었다.


이번 초호황은 단순히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서 벌어지는 호황이 아니라, AI 서버 구축과 데이터센터 건립같이 메가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구조적 호황이란 점에서 다르다. 적어도 몇 년 치 곳간은 넉넉하게 채웠으리라. 정말 단군 이래 이렇게 단일 업종이 좋았던 사례는 드물 것이다. 두 회사는 물론이고, 나라 전체에도 큰 경사다.


올해 252개 상장사의 순이익 증가 폭 중 70% 이상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할 것이라는 조사도 나왔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제에 반도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조선과 방산 등의 업종이 주목받고 있긴 하지만, 과연 다른 업종들은 비록 초호황까지는 아닐지라도 제대로 수익은 내고 있는지 아쉬운 대목이 많다.


삼성전자 분기별 실적 추이. ⓒ 연합뉴스

때마침 주목할 뉴스가 나왔다. 한때 삼성전자와 라이벌이었던 LG전자가 지난해 4분기에 109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LG전자는 2016년 이후 9년 만에 분기(分期) 적자를 기록했다. 회사 측은 전장사업 등에 힘을 쏟으면서 경쟁력 떨어지는 전통 가전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관세 부담에다 중국 업체의 추격으로 출혈 경쟁이 심했고 대규모 희망퇴직으로 인한 지출도 컸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LG전자만이 아니라 불황의 경계선을 지나는 다른 국내 업체들에게도 비슷한 고민거리다.


중국의 추격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한국이 주도하던 세계 TV 시장은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저가 물량 공세를 펴 온 중국 브랜드들이 장악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Omdia)의 지난해 3분기 세계 TV 시장점유율을 보면 TCL·하이센스·샤오미 등 중국 업체(31.8%)가 삼성전자·LG전자 등 한국 업체(28.4%)를 앞질렀다. 삼성전자 내에서도 TV 사업부는 지금 적자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은 2024년보다 260.9억 달러나 늘었지만, 그중에 반도체 증가분이 314.7억 달러나 된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4%로 역대 최고였다.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15대 품목 중 9개가 수출이 마이너스였다. 석유화학(-11.4%), 2차전지(-11.9%), 디스플레이(-9.4%) 등이 대표적이다.


반도체로 인한 수출 호황에도 불구하고 민생 경기는 나아질 조짐이 별로 없다. 가계의 씀씀이를 나타내는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해 11월에 전달보다 3.3% 급락했다. 반도체는 첨단 고부가 기술집약업종이라 당장 청년 고용에도 한계가 있다. “쉬었음”이라고 응답한 2030 청년은 지난해 10월 기준 73만명을 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민감도가 큰 반도체에 성장의 무게중심이 쏠릴 경우 조금만 대외 여건이 악화되면 실물경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소 지엽적일 수도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반도체 초호황 때문에 겪는 애로가 있다. 삼성전자 내에서 반도체 사업부는 함박웃음이지만, 비싸진 D램과 낸드플래시 등을 사용하는 스마트폰 사업부는 원가 폭탄에 울상이다. 조만간 공개될 갤럭시 S26 시리즈는 모델별로 10~20만원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뉴스에 환호했던 소비자들은 그 열매가 엉뚱하게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 완제품의 가격 인상으로 돌아오는 모습에 다소 당황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은행은 반도체가 한국경제의 ‘양날의 칼’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23일 “앞으로 반도체 수출의 증가세가 높은 수준에서 둔화되고 미국 관세 등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확대되면서 2026년에는 수출의 성장기여도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는 최근 반도체 업황 호조가 우리 경제에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향후 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전환할 경우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장이 예전보다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경제에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새해 들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치솟는 원·달러 환율이다. 환율은 한 국가의 경제 실력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지난해 말 정부에서 강도 높은 구두 개입에다 국민연금의 환(換) 헤지, 세금 감면을 통한 서학개미의 국내 복귀 유도 등 환율 안정책을 쏟아 내면서 원·달러 환율은 다소 진정되었다. 하지만 최근 10거래일 연속 다시 상승세를 지속하면서 1월 14일엔 1477.5원까지 올랐다. 지난 12월 23일(1483.6원) 이후 다시 1480원을 노리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적 지지선이 무너지고 있다는 분위기다. 외환 딜러들은 “지금은 이성적 분석이 불가능한 상태로 단순한 수치 변화가 아니라 당국의 개입마저 통하지 않는 시장의 역습”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4723.10, 코스닥 942.18, 원-달러 환율 1477.50 이라는 결과가 적혀 있다. ⓒ 하나은행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실물경제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流動性), 재정 확대와 통화 완화 기조 유지, 역대 최장 수준의 한미(韓美) 금리 등을 원화 약세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특히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 그리고 이에 따른 적자 국채 발행이 고(高)환율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많다. 이는 곧 높은 물가로 연결된다. 따라서 통화 정책은 완화 기조를 끝내고 긴축 기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은 지난해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3만 6107달러로 2024년보다 0.3% 감소했다. 대만(3만 8748달러)에게 22년 만에 역전당했고, 2023년 한국이 추월하는 데 성공했던 일본과의 격차는 줄어들었다. 대만은 2021년 3만 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올해 4만 달러를 넘을 전망이지만, 한국은 2014년 3만 달러 대에 진입한 뒤 12년간 3만 달러 대의 벽에 딱 갇혀 있다.


지금 한국이 반도체 초호황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된 이유로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경직된 고용 시장 △노란봉투법이나 경직된 주52시간제 적용 같은 과도한 행정규제 △분배에 더 치중하는듯한 정부의 확장 재정 운용 △저출산과 고령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노동생산성 저하 등을 앵무새처럼 떠들어 왔다. 하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런 마당에 용인 반도체 공장을 새만금으로 옮기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여당 일부에서 나왔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 요소들만 가득하다.


따라서 정부는 반도체가 주도하는 증시 호황과 수출 호조에 안주하기보다는 원화 추락이 보여 주는 한국경제의 민낯을 직시하고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단순히 금융기법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서학개미 탓만 하지 말고, 외환 시장이 원화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이유를 잘 살펴서 시장 심리를 주도할 혁신책이 필요하다. 가령 우리 업계가 정부에 요구하고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내용, 즉 연구개발 등의 일부 직종에 한해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요구만이라도 정부가 고집을 꺾고 들어준다면 외환 시장의 환율은 당장 영향받을 것이다. 자기 고집과 자기 확신으로만 정치하고 있을 순간이 아니다. 환율의 경고를 무시하면 안 된다.

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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