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먹던 공진단, 나에게 필요한 시점은 언제일까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2.11 07:00  수정 2026.02.11 07:00

고은경희한의원 구로디지털단지점 이한별 원장.

조선 왕들이 아꼈던 공진단은 이름부터가 남다르다. 왕실에서만 썼다는 보약, 사향과 녹용을 아낌없이 넣어 만들던 귀한 환약. 지금으로 치면 ‘왕 전용 프리미엄 컨디션 관리제’쯤 되는 약이다.


그래서일까, 공진단이라고 하면 사람들 머릿속에는 여전히 ‘왕이 먹던 귀한 약’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이 지점은 꽤 정확하다.


조선 시대 기록을 보면 공진단은 분명 특별 대우를 받았다. 내의원에서 따로 원료를 관리했고 사신을 보내 진짜 사향과 녹용을 구해 와야 비로소 제대로 된 공진단을 만든다고 적어놓기도 했다.


병약했던 경종은 체력이 확 떨어질 때마다 공진단을 찾았다. 선천적으로 허약한 데다 정치 싸움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보니 쉽게 지치고 밥맛이 뚝 떨어지는 날이 많았다.


승정원일기에는 ‘공진단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묻는 대목까지 나온다. 이미 복용하던 공진단을 머리맡에 두고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면 한 알씩 아껴 먹던 모습이 그려진다.


정조와 순조도 마찬가지다. 정조는 과로와 두통, 소화불량, 화병 증상이 겹칠 때 특히 중요한 행사나 업무를 앞두고 ‘이번에는 좀 제대로 받쳐야 한다’ 싶을 때 공진단을 처방받았다.


순조는 세도정치 속에서 식욕과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자, 비위와 신을 함께 보하는 약으로 공진단을 권유받는다.


왕이라서 버텨야 할 자리가 많았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기력이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떠올린 약이 공진단이었다는 뜻이다.


공진단의 구성과 효능을 한의학적으로 풀어보면 이렇다. 사향은 막힌 기혈 순환을 뚫어주고 머리를 맑게 도와준다. 녹용은 신장을 보하고 체력과 면역을 끌어올리는 대표적인 보약 재료다. 여기에 당귀와 숙지황이 허해진 혈을 채워주고 간·신 기능을 받쳐준다.


결국 공진단은 기와 혈, 정(精)을 한꺼번에 보강해 주는 처방이다. 단순히 ‘피곤할 때 먹는 약’이 아니라 체력의 바닥이 보이고 집중력·회복력까지 같이 떨어졌을 때 바닥을 한 번 더 받쳐 주는 역할에 가깝다.


요즘 진료실에서 공진단이 필요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조선 왕들의 상황과 묘하게 겹친다. 선천적으로 허약한 체질, 감기 한 번 걸리면 오래 가는 사람, 야근과 스트레스로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 수험생처럼 에너지 소모가 큰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경우다.


큰 수술이나 질환 뒤에 ‘살아난 건 맞는데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회복기에도 공진단을 고려하게 된다. 평소에는 일반 보약과 생활관리를 하다가 유난히 힘든 구간에는 공진단처럼 한 단계 더 강한 보약을 덧붙여 쓰는 전략이다.


그렇다고 공진단을 너무 무겁게만 볼 필요는 없다. 왕이 먹었다고 해서 곧바로 임종 직전 비상약이 되는 건 아니다. 조선 왕실에서도 일상적인 보양은 탕약과 음식으로 하면서 ‘이번에는 정말 기운을 한 번 확 끌어올려야 할 때’ 공진단을 꺼냈다.


오늘날로 옮기면,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둔 직장인이나 결정적인 시험을 앞둔 수험생, 출산·수술 후 회복기에 있는 사람이 일정 기간 집중해서 쓰는 보약에 더 가깝다.


다만,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맞는 약은 아니다. 열이 많고 얼굴이 자주 붉어지며 불면과 두근거림이 심한 패턴이라면 먼저 이런 증상을 가라앉히는 게 순서일 수 있다.


반대로 손발이 차고 쉽게 지치며, 병을 한 번 앓으면 회복이 유난히 느린 사람이라면 공진단이 훨씬 어울린다.


조선 시대에도 왕이 공진단을 계속 먹을지, 다른 처방으로 바꿀지 맥과 얼굴빛, 수면과 식욕을 보고 매번 조정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은 그 역할을 한의사가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정리하면, 공진단은 조선 왕들이 건강이 흔들릴 때마다 믿고 찾던 역사적인 귀한 약이다. 비상시에만 꺼내는 극약이 아니라, 왕의 몸과 마음이 버거워질 때 한 번 더 받쳐 주는 왕실 전용 보약이었다. 현대에서도 공진단은 그런 자리에서 쓸 때 가장 빛난다.


내 몸의 체질과 지금 상황을 제대로 짚고 꼭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기간만큼 써 준다면, 왕이 아끼던 그 약을 현대적으로 잘 쓰는 셈이다.


글/ 이한별 한의사·구로디지털단지 고은경희한의원 대표원장(lhb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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