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유지 확인된 만큼 갈등 접고 정상적 가족관계 회복해야
70년 인화의 전통 흔든 상속 분쟁, 더는 기업 부담으로 남겨선 안 돼
구광모 회장 ⓒLG
▲욕망은 종종 천륜을 앞선다. 혈연은 인간 사회의 가장 강한 결속이라지만, 그 결속 역시 이해(利害) 앞에서는 계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목도하는 수많은 분쟁과 추락의 서사는 결국 이 단순한 진실에서 출발한다. 특히 권력이나 돈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면 그때 쌓인 앙금은 남보다 더 깊고 더 사납다.
그래서 과거 왕권을 노린 왕자의 난, 기업의 경영권이나 재산권을 둘러싼 오늘날의 형제의 난·조카의 난 등이 터지면 나라와 기업은 여지없이 흔들렸다. 집안 사람끼리 싸우면 공멸한다는 뜻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이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인들의 입에 회자하는 이유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선친인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의 상속 재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법정 다툼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구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가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회복청구 소송 1심 선고에서 원고 측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세 모녀가 2023년 2월 구 선대회장의 LG 지분 대부분을 구 회장이 상속받은 것이 부당하다며, 법정 상속 비율인 '배우자 1.5, 자녀 1인당 1'로 다시 재산을 나누자고 소송에 나선 지 3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구 선대회장이 남긴 재산은 ㈜LG 주식 11.28%를 비롯해 모두 2조원 규모다.
구 회장은 지분 중 8.76%를 상속받았고 두 딸은 각각 2.01%, 0.51%를 물려받았다. 김 여사는 주식을 상속받지 않았다. 이들은 유언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구 회장에게 지분을 양보했다며 상속 재산에 대한 합의의 효력이 없다는 주장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구광모 회장에게 '경영 재산'을 승계해야 한다는 내용의 구본무 선대회장의 유지 메모가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협의가 무효라는 세 모녀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재무관리팀 직원에게 상속 상황을 여러 차례 보고받았고 협의에도 참여했다"며 "원고 측 요청에 따라 협의서 내용을 변경하기도 했으므로 개별 상속재산에 대한 원고들의 구체적인 의사 표시도 있었다"고 판단했다. 상속재산분할협의서가 적법하게 작성됐다는 의미다.
▲일단 LG는 한숨을 돌렸다. 그렇지만 인화(人和)의 표본으로 꼽힌 LG가(家)의 재산권 분쟁이 4대에 이르러 불거진 것은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LG가는 구인회 창업회장부터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선대회장을 거쳐 현재 구광모 회장에 이르기까지 70년간 잡음 없는 승계로 재계의 모범이 돼 왔다.
실제 구인회 창업회장은 6남4녀를, 구자경 명예회장은 4남2녀를 뒀지만 집안싸움 한번 없었다. 이는 "가화(家和)가 경영의 근본"이라는 구인회 창업 회장의 유지를 받든 것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자녀가 많았던 LG가로서는 가족 간 서열을 존중하고 다툼을 삼가는 풍토를 확립해야만, 분쟁에서 비롯될 수 있는 사소한 리스크를 줄이고 기업의 신뢰와 이미지를 함께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해온 것이다. 비록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의 목소리도 있지만, '장자 승계' 역시 이같은 기업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제 세 모녀의 선택만 남았다. 1심 판결 이후 세 모녀가 소송전을 이어갈 명분은 더욱 약해졌다. 재판부가 "구본무 선대회장의 유지 메모가 있었다"고 판단한 이상, 고인의 뜻을 받드는 것은 유족의 도리다.
상속은 가문의 전통, 명예, 정신, 자산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는 선대회장들과 LG를 지켜봐 온 국민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나아가 구광모 회장과도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갈등이 길어질수록 상처만 깊어진다.
특히 지금 세계 경제는 컵에 물이 가득 차 있어서 한 방울만 더해지면 물이 흘러넘치듯, 아주 미세한 충격만 있어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지나고 있다. 미중 통상 갈등에 이은 트럼프발 관세 폭탄, 인공지능(AI) 기술 급변 등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기업의 부침도 더욱 가팔라지는 양상이다. 시장 자체가 사라지는 패러다임 변화에는 1등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다. 구광모 회장에겐 1분 1초가 아쉬운 시기다.
이런 상황에 오너 일가의 갈은 결국 기업 가치와 주주 이익, 나아가 한국 기업 전체에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서로 손을 내밀고 진솔한 대화를 시작했으면 한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