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는 상품을 넘어, 신뢰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시대다. 브랜드 커머스의 중심에는 자사몰이 있다. 자사몰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일군 창업자들의 여정을 들여다봤다. 성과보다 먼저 찾아온 망설임, 시행착오 속에서 내린 선택,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쌓아올린 과정까지.
이름이 ‘얼렁뚱땅’이면 어딘가 느슨해 보여도 이해받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실수가 있어도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고, 조금 부족해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이세화 대표는 초창기 그 이름을 일종의 방어 기제로 지었다고 말한다. 혹시 비판을 받더라도 이름이 완충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는 것이다. 혼자 모델을 하고, 포장하고, CS까지 맡던 시절의 솔직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얼렁뚱땅 상점은 그 이름과는 반대로 운영된다. 유튜브 채널 ‘통닭천사’로 구독자 10만 명을 보유한 이세화 대표를 만나, 대충해도 될 것 같은 이미지를 어떻게 브랜드 성장 전략으로 전환했는지 들어봤다.
웃기지만, 대충 내놓진 않는다
ⓒ얼렁뚱땅 상점 이세화 대표
얼렁뚱땅 상점의 출발은 단순했다. 방송국 편성 PD로 일하던 이세화 대표는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일이 맞지 않는다고 느꼈고, 퇴사 후 별다른 계획 없이 자신이 입을 티셔츠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공장에 문의하자 최소 제작 수량은 10장. 혼자 입기엔 많은 양이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혹시 살 사람 있을까요?”라고 올렸고, 그 가벼운 질문이 브랜드의 시작이 됐다.
초기에는 주문 접수부터 모델 촬영, 포장, CS까지 모두 혼자 감당했다. 예상보다 주문이 몰리자 친구들을 불러 좁은 방에서 송장을 정리하고 제품을 나눴다. 그 과정을 숨기지 않고 공개했다. 고객들은 “진짜 얼렁뚱땅이네”라며 웃었고, 날것 그대로의 모습에 호감을 보였다. 서툴렀지만 솔직했고, 그 솔직함이 브랜드의 첫 이미지를 만들었다. 다만 제품 기준만큼은 느슨하지 않았다. 웃기더라도 실제로 입을 수 있는 옷이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밈으로 소비되고 끝나는 티셔츠는 만들지 않겠다는 내부 기준이 그때부터 자리 잡았다.
이 기준은 곧바로 시험대에 올랐다. ‘평양냉면 먹는 개구리’ 티셔츠가 등장했을 때다. 논쟁이 한창이던 시점, “동물이 냉면을 먹고 있으면 더 웃기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상상에서 출발한 제품이었다. 결과는 누적 2,000장 이상 판매.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겉으로 보면 밈을 잘 탄 성공처럼 보이지만, 내부의 해석은 다르다. “확실한 재미가 있으면 통한다는 걸 확인했죠. 그런데 웃기기만 하면 오래 못 가요.” 이 대표의 말처럼, 이 제품이 남은 이유는 단지 웃음을 주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입을 수 있는 옷’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얼렁뚱땅 상점의 기획은 생각보다 보수적이다. 아이디어는 많이 나오지만 대부분은 다음 날 사라진다. “다음 날 보면 안 웃긴 게 대부분이에요.” 시간이 1차 필터 역할을 한다. 마지막에는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99가지 이유가 있어도 하나의 치명적인 리스크가 보이면 안 가요.”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 출시되는 제품은 철저한 검토를 거친 결과물이다.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그 이후의 모든 과정은 결코 얼떨결에 맡기지 않았다.
이제는 팬심 아닌 제품으로
ⓒ얼렁뚱땅 상점에서 만든 ‘더 오피스 머그컵’
초기 성장은 팬덤의 힘이 컸다. 이세화 대표는 유튜버 ‘통닭천사’로 활동하며 1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고, 침착맨의 동생으로도 알려져 있다. 자연스럽게 채널을 통해 유입된 고객들이 응원의 의미로 제품을 구매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런 구조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 봤다. “결국 제품이 좋지 않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전환점은 최근 1~2년 사이였다. 2024년 연매출이 얼렁뚱땅 상점 내 최고치를 기록한 뒤 성장 곡선이 둔화됐다. “예전에는 재밌으면 사줬는데, 이제는 아니었어요.”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소비는 빠르게 줄었고, ‘누구의 굿즈’이기 때문에 사는 시기는 끝났다고 판단했다.
그때부터 질문은 ‘재밌는가’에서 ‘왜 사야 하는가’로 바뀌었다. 팬이 아닌 사람도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품질에 대한 기준이 더욱 강화됐다. ‘장인 셔츠’는 얼렁뚱땅 상점이 기본 셔츠를 제대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선보인 라인이다. 가격은 무신사 스탠다드나 스파오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디테일과 마감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내부 기준으로 설계됐다. 셔츠 깃에 심을 넣는 고급 공정을 고집하다 바늘이 수차례 부러졌고 생산성은 떨어졌지만, 기준은 낮추지 않았다.
글로벌 IP 협업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표는 평소 좋아하던 드라마 ‘더 오피스’의 한 장면이 담긴 티셔츠를 입고 촬영에 나섰고, 영상 댓글에 제품 문의가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권리자를 수소문해 계약까지 체결했다. “저를 좋아해서 오는 사람 말고도, 제품 자체 때문에 들어오는 고객이 필요했어요.” 인물 중심 유입을 콘텐츠 중심 유입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이었다.
얼렁뚱땅 상점은 팬을 배제한 것이 아니다. 다만 팬심만으로 유지되는 구조를 넘어, 제품이 구매의 이유가 되는 브랜드로 이동하고 있다.
실험은 가볍게, 기준은 무겁게
ⓒ통닭천사의 특제 닭고기 카레
얼렁뚱땅 상점이 카레를 출시했을 때 “옷 가게가 무슨 카레냐”는 의문은 자연스러웠다. 브랜드의 카테고리 확장은 정체성의 시험대에 오른다는 뜻이다. 특히 패션에서 식품으로의 진출은 세계관 확장이 아닌 산만함으로 해석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 지점을 오히려 자유로 받아들였다. “샤넬에서 카레가 나오면 다들 ‘왜?’라고 묻겠죠. 향수나 가방은 기대해도 카레는 기대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저희는요? 아무도 기대를 안 해요.” 얼렁뚱땅이라는 이름은 완벽한 일관성을 기대하지 않는 브랜드라는 전제를 만든다.
하지만 과정은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카레는 1년 반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오프라인 매장도 없는 브랜드가 식품을 만든다는 건 공장 입장에서도 리스크였다. 닭을 한 시간 이상 끓여 육수를 내야 한다는 요구는 비효율적이라며 거절당했다. 그는 직접 만든 카레를 들고 설득했고, 상온 레토르트 방식으로 개발해 의류와 함께 배송할 수 있는 구조까지 설계했다.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사업으로 성립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립밤은 ‘당연히 되겠지’에 가까운 확신이었다. “겨울엔 누구나 립밤을 쓰니까, 우리 캐릭터만 입히면 당연히 팔릴 줄 알았어요.”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당시 한 직원이 “이건 아닐 것 같다”고 말했지만, 이 대표는 밀어붙였다. 이번만큼은 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판매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제야 이세화 대표는 인정했다. “이번엔 제가 틀렸어요.” 자책하기보다는 판단 과정을 복기했다. 실패를 덮어두는 대신 방향을 다시 잡았고, 남은 재고는 팝업 사은품으로 전환했다. 억지로 소진하기보다 고객에게 기분 좋은 경험으로 남기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얼렁뚱땅상점은 의류에만 머물지 않는다. 카레를 선보이고, 립밤도 만든다. 도전하는 카테고리는 계속 달라지지만, 태도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무엇을 하든 대충 내놓지 않는 것. 기대치는 낮출 수 있어도, 기준까지 낮추지는 않는다.
우리만의 ‘바이브’를 짓다
ⓒ얼렁뚱땅 상점 공식 자사몰
무엇을 내놓을지, 무엇을 버릴지, 무엇을 인정할지. 얼렁뚱땅 상점의 기준은 제품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기준은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이세화 대표에게 그 공간은 곧 자사몰이었다.
얼렁뚱땅 상점의 온라인 판매는 스마트스토어에서 시작됐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채널이었다. 그러나 이세화 대표에게 그곳은 늘 ‘남의 집’처럼 느껴졌다. “정해진 틀 안에서는 우리 상점의 바이브를 100% 보여주기 어려웠어요.” 판매는 하고 있었지만, 브랜드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동안 쌓아온 데이터와 리뷰도 중요한 자산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자산은 ‘우리만의 공간’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아임웹 기반의 자사몰로 옮겼고, 현재는 전체 매출의 약 80%가 자사몰에서 발생한다.
이 대표에게 자사몰은 단순한 판매 채널이 아니다. 상세 페이지와 공지사항조차 하나의 콘텐츠로 다듬는다. 배송 공지에도 위트를 더한다. 목표는 “살 게 없어도 괜히 기웃거리게 되는 동네 작은 소품샵”이다. 당장 결제하지 않더라도,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운영 역시 감각에만 기대지 않는다. 매달 매출을 점검하고, 유입 경로를 확인한다. 상세페이지의 문장 하나, 이미지 하나를 바꾸며 A/B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감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데이터도 함께 봐요.” 웃음은 직관에서 시작하지만, 반복 가능한 성장은 구조에서 나온다는 것이 이 대표의 판단이다.
전국 5개 도시 팝업 투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서울에서 통했던 제품이 다른 지역에서도 통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올해 부산, 대구, 광주, 청주, 서울을 순회할 계획이다. 어떤 제품 앞에 오래 머무는지, 어떤 말들이 오가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온라인에서는 보이지 않는 반응을 현장에서 검증해보려는 시도다.
결국 얼렁뚱땅상점은 ‘가벼움’을 전략으로 만든 브랜드다. 겉으로는 ‘대충’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반복되는 선택은 결코 느슨하지 않다. 무엇을 내놓고 무엇을 버릴지에 대한 기준이 이 브랜드를 지탱한다. 그래서 얼렁뚱땅 상점은 가볍게 시작했지만, 결코 가볍게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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