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도 북적…동대문 달군 ‘볼꾸’ 열풍 [MZ템 연구소]

남가희 기자 (hnamee@dailian.co.kr)

입력 2026.02.27 07:30  수정 2026.02.27 07:30

SNS 타고 확산된 '볼꾸' '키꾸' 문화

'성지' 동대문 종합시장 10·20대 발길 이어져

소액으로 완성하는 취향 저격 볼펜이 인기 비결

기자가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직접 만들어본 볼펜. ⓒ데일리안 남가희 기자

잘파세대(Z+알파) 사이에서 ‘볼꾸(볼펜 꾸미기)’와 ‘키꾸(키캡 꾸미기)’가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다이어리 꾸미기(다꾸)'에 이어 일상 소지품까지 ‘커스터마이징’하는 '별다꾸('별걸 다 꾸민다'의 줄임말)' 문화가 확산하면서다.


'볼꾸'는 볼펜 완성품을 구매하는 대신 몸통과 비즈, 참(Charm)을 취향대로 조합하는 방식이다. 특유의 타건감과 딸깍거리는 소리로 인기를 끄는 ‘키캡 키링 꾸미기(키꾸)’까지 가세하며 열풍은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유행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빠르게 확산 중이다.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영상을 통해 '성지' 방문 후기와 가격 정보, 조합 ‘꿀팁’이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이 같은 열풍은 온라인 유통가로도 번지고 있다. 집에서 간편하게 체험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지그재그 등 패션 플랫폼에서도 ‘볼꾸’, ‘키꾸’ 관련 상품 검색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완제품 키트나 DIY 부자재를 소량으로 판매하는 상품군도 확대되고 있다.


실제 지그재그가 2월1일부터 25일까지 볼펜 및 키캡 관련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볼펜 거래액은 71% 늘었고, 키캡 거래액은 3145% 급증했다. 같은 기간 키캡 검색량 역시 2718% 증가하며 관심이 폭발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방문한 동대문 종합시장 5층 악세서리 부자재 상가는 평일 오전임에도 '볼꾸'를 위해 찾아온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데일리안 남가희 기자

이 같은 유행에 '볼꾸', '키꾸' 성지로 불리우는 동대문 종합시장이 모처럼 활기를 띄고 있다. 잘파들의 새로운 놀이터로 부상하면서다.


지난 25일 방문한 동대문 종합시장 5층 악세서리 부자재 상가는 평일 오전임에도 '볼꾸'를 위해 찾아온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부분이 10대~20대로, 상당히 한산한 모습을 보이는 다른 구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한 상인은 "한동안 불경기로 사람이 없다시피 했는데 SNS 유행을 타면서 예전보다 사람이 확실히 많이 늘었다. 특히 젊은 인구 방문이 늘어나 분위기가 한층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투명한 아크릴 칸막이 상자 안에 형형색색의 비즈와 참 장식들이 빼곡히 담겨 있는 모습. ⓒ데일리안 남가희 기자
'볼꾸'는 상점에 마련된 일회용 그릇에 원하는 비즈를 담고, 취향에 맞는 볼펜 바디를 고른 뒤 비즈와 참을 차례로 끼워 조합하면 된다. ⓒ데일리안 남가희 기자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기자도 직접 '볼꾸'에 도전해봤다.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상점에 마련된 일회용 그릇에 원하는 비즈를 담고, 취향에 맞는 볼펜 바디를 고른 뒤 비즈와 참을 차례로 끼워 조합하면 된다.


설명만 놓고 보면 어렵지 않아 보였지만, 막상 손에 쥐고 보니 이야기는 달랐다. 색 조합과 균형을 맞추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비즈를 넣었다가 다시 빼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이미 다섯 개째 작품을 완성 중인 듯한 옆 사람의 손놀림을 힐끗거리며 참고해봤지만, ‘감성 굿즈’ 한 개를 완성하기까지는 꽤나 공이 들어갔다. 결국 기자는 매장 내에 본보기로 걸려있는 조합 방식을 참고해 볼펜을 완성했다.


그래도 귀여운 볼펜을 완성하고 나니 묘한 즐거움이 밀려왔다. 계산대에서 가격을 확인해보니 2800원 남짓. 부담 없는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있다는 점이 잘파세대의 발길을 이끄는 이유 중 하나로 읽혔다.


그럼에도 잘파세대들의 마음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왜 잘파세대는 이 작은 볼펜 하나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현장에서 만난 한 방문객은 “인스타 릴스를 보다가 해보고 싶어서 왔다”며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방문객은 “가격이 부담되지 않아서 친구들과 여러 개 만들어본다”며 “작지만 확실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동대문 종합상가에서 악세서리 비즈를 구경하는 아이들의 모습. ⓒ데일리안 남가희 기자

이처럼 최근 잘파세대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흐름은 ‘작고 즉각적인 만족’이다.


고가의 소비 대신 수천원으로 완성할 수 있는 취향형 소비가 주목받고 있다. 고물가와 취업난 등 불확실성이 커진 환경에서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확실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맞물렸다는 분석이다.


어쩌면 잘파세대가 '볼꾸', '키꾸'를 위해 동대문을 찾는 이유도 단순히 귀여운 볼펜을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닐지 모른다.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내가 원하는 색과 모양을 선택하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실함 때문 아닐까.


작은 볼펜 하나에 담긴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일상 속에서 스스로 감정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의 또 다른 이름이 ‘볼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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