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에너지·물류 동맥 막혔다…산업계 '호르무즈 리스크' 확산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03.03 13:15  수정 2026.03.03 13:15

전쟁위험해역 경보…해운협회 안전조치 강화

유가 급등에 반도체·석화 등 에너지 업종 압박

"장기화 시 수입처 다변화"...조선업 영향 주목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있는 유조선.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 긴장이 고조되면서 산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확산되고 있다. 민간 선박 피격 사례가 잇따르며 해협 통항이 위축될 조짐을 보이자 해운은 물론 에너지·제조업까지 연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국해운협회는 전날 회원사에 ‘호르무즈 해협 통항 선박 및 선원 안전조치 준수’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고 전쟁위험해역 관리 체계에 따른 안전조치 강화를 안내했다.


공문에는 통항 전 사전 안전교육과 비상대응 훈련 실시, 선박별 보안계획 수립을 포함한 위험평가 강화, 전쟁보험 가입 상태 및 특약 조건 재점검, 해양수산부 종합상황실과 청해부대에 선박 위치 및 통항 정보 공유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해운협회 관계자는 “해당 해역은 전쟁위험해역 관리 체계에 따라 엄격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며 “선원 생명 보호와 선박의 안전 운항 확보를 위해 실무 권고 사항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현장 위험은 이미 통항을 위축시키는 수준까지 높아졌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공격을 예고했고, 주말 사이 민간 선박 피격 사례가 보고되면서 일부 글로벌 선사들은 운항 중단에 들어갔다. 2023년 말 홍해 사태 이후 수에즈 운하 통항이 크게 줄어든 전례가 있는 만큼 해협 정상화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20~3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한국은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이 70.7%에 달하고 이 가운데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액화천연가스(LNG)도 20.4%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어 해협 리스크가 확대될 경우 에너지 조달과 해상 물류가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리스·독일·일본 주요 선사들이 운항 중단을 선언한 가운데 국내 선사들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호르무즈 해협 안팎을 운항 중이거나 인근에 위치한 국내 해운사 소속 선박은 약 30여척으로 파악된다. HMM은 해협을 운항하던 컨테이너선 1척을 두바이항에 정박시킨 상태다. 항로 전면 우회 결정은 아직 내리지 않았지만 위험 구간 인근 선박에 대해서는 대체 항만 하역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제 유가가 전 세계 원유 물동량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여파로 급등하고 있는 2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뉴시스

비용 변수는 전쟁위험 보험료와 운임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우회 루트를 활용할 경우 해상운임이 기존 대비 최대 50~80% 상승할 수 있고, 육로 운송과 통관 절차가 추가되면 운송 기간이 3~5일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전쟁 위험이 고조됐던 구간에서는 보험료가 최대 7배까지 할증된 사례도 있었다. 물류비 상승은 해운사뿐 아니라 화주와 수출기업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제유가도 즉각 반응했다. 하루 만에 7% 넘게 급등하며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섰고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유가 상승은 연료비와 전력비 부담을 높여 반도체·철강·석유화학 등 에너지 투입 비중이 큰 업종의 수익성을 압박할 수 있다. 특히 구조조정 국면에 있는 석유화학 업계는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정부도 경계 수위를 높였다. 해운선사에 호르무즈 해협 운항 자제를 권고하는 한편 에너지·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원유·석유제품 208일분 비축을 근거로 단기 수급 대응 여력을 강조하면서도,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중동 외 도입 물량 확보를 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정상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이 유가 급등을 원치 않는 데다 중동 산유국 역시 수출 차질 장기화를 부담스러워하는 만큼 협상 진전에 따라 해협 통항이 점진적으로 회복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최영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결국 모두가 호르무즈 해협 내 정상적인 선박 운항이 꼭 필요한 상황으로, 중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진전되며 점차 정상화될 전망”이라면서도 “다만 전쟁·협상의 장기화, 제3의 국가 참전 등 유가와 경기 등에 미치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해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도 “현재로서는 1개월 이내에 상황이 진정되고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장기화와 원유 공급망 안정선 훼손이 유가 급등, 고공행진으로 이어질 경우 장기적 경기 영향이 불가피하다”면서 “과거 유가 급등 시 시차를 두고 글로벌 경제의 경기 침체와 금융 위기로 연결됐던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가격지표 상승에 따른 해운·조선 업종 영향도 거론된다. 미국의 이란 공습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지난달 27일에도 유가 상승과 맞물려 대형 원유수송선(VLCC) 운임이 약 40% 급등한 바 있다. 해협 봉쇄 영향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경우 원유선과 가스선 운임의 추가 상승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봉쇄가 장기화되지 않을 경우 단기 변동성에 그칠 수 있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동북아 국가들은 원유·LNG·액화석유가스(LPG) 수입처 다변화를 고려해야 하고, 국내 빅3 조선업체들은 탱커시장 중고선 거래를 늘리고 가격을 높여 신조시장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며 “탱커를 보유한 해운사의 자산가치도 부각될 수 있지만 중동발 원유와 LNG 장기운송계약 영업에는 차질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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