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향방이 분기점… 1500원대 고착화 우려도
불확실성 해소가 관건… "예측 가능한 범위 들어와야"
4일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실시간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로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으로 불리는 1500원을 넘어섰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이후 약 17년 만의 일이다.
당초 당국은 원화 약세 압력이 점진적으로 해소되며 1400원대 초반에서 안정될 것이라 내다봤으나,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변수로 외환 시장의 혼란이 극심해진 모습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새벽 원·달러 환율은 뉴욕증시 개장 직후 상승 폭을 빠르게 키우다 장중 한때 1506.0원까지 치솟았다.
주간 거래 종가 대비 무려 19.6원 급등한 수치다.
이후 상승 폭을 일부 반납하며 1485.7원에 야간 거래를 마쳤으나, 시장이 받은 충격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의 흐름 역시 불안했다.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 후 1480원을 중심으로 오르내리다 전 거래일보다 10.1원 오른 1476.2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금융시장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특히 세계 원유 수송의 중심인 호르무즈 해협을 두고 이란이 봉쇄를 선언하면서 국제 유가가 수직 상승했다.
이날 기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4.56달러를 기록해 전일(67.02달러) 대비 7.54달러 올랐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로서는 유가 상승이 곧 경상수지 악화와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직격탄이 된 셈이다.
이번 환율 급등은 기존 불안했던 원화 가치를 전쟁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전쟁 이전부터 원화는 거주자 해외증권투자, 외국인 주식매도 등 수급부담과 엔화 등 주변국 통화 움직임에 이미 하방 압력을 견디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1400원대 초반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고, 시장 역시 당국의 방어 의지를 신뢰하며 관망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번 중동 리스크라는 외부 변수가 더해지면서 환율 안정화 시나리오는 힘을 잃은 모습이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세계 금융 시장을 흔들면서 시장의 자금 흐름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뉴욕 증시는 일제히 약세를 보인 반면,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과 달러 가격은 상승폭을 키웠다.
반면 원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대표적인 '위험선호 통화'로 분류된다.
위기 상황마다 우선적으로 매도세가 몰리는 탓에 체력이 급격히 저하된 것이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당분간 환율 상단을 열어두고 보수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경우 원화 약세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분석이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 고조됨에 따라 국제유가와 환율도 큰 폭으로 상승했고, 유가 상승은 수입 증가와 무역수지 흑자 폭 축소로 이어져 원화에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국제유가는 120달러까지 상회한 바 있고, 전세계 인플레이션 압력을 자극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화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상단인 1480원을 상회할 경우 1500원까지 염두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강화해 1480원대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다만 수출업체의 네고 물량과 고점 매도 수요가 상단을 일정 부분 제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정부 개입 경계선인 1480원대 후반을 일차 고점으로 판단한다"며 "전쟁이 정점을 지나면 달러 강세·원화 약세 흐름도 되돌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유정 하나은행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향후 한 달간의 추이가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시장에 가장 큰 충격을 줄 미 지상군 투입의 경우 초기 변동성은 극에 달하겠지만, 이후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오히려 안정을 찾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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