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상승 시 가계 및 수출 물류비 동반 상승
원재료비 오르면 소비재 가격도 인상
가계 실질구매력 저하 가능성
미국과 이란의 무력충돌 속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를 찾은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뉴시스
국제 유가 급등이 에너지에 그치지 않고 식품·생활용품 가격과 수출 물류비까지 끌어올리며 가계와 중소기업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유가가 급등한 가운데, 유가 상승의 파급 경로는 단순히 주유소 기름값에 그치지 않는다.
원재료 수입 비용 증가→생산자물가 상승→소비재 가격 전가로 이어지는 구조로 인해, 가계 실질 구매력이 갉아먹히고 수출 기업은 물류비 급증이라는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
국제 유가 상승은 에너지 비용만 올리지 않는다. 원맥·원당 등 식품 원료, 수지·용제 등 석유화학 계열 원자재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제조원가도 끌어올린다.
식품·생활용품 등 소비재 업계가 이를 판매 가격에 전가할 경우 물가 상승은 소비자에게 직격탄이 된다.
국내 식품업계는 이미 원재료 가격 인상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원맥과 원당 등 주요 원재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유가와 환율이 동반 상승할 경우 생산비 인상이 불가피하다.
미국과 이란의 무력충돌 속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를 찾은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뉴시스
물가 28.7% 폭등 기억…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재현 가능성
유가 급등이 물가 전반을 끌어올리는 구조는 반세기 전 오일쇼크의 충격과 닮아 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촉발된 2차 오일쇼크는 10·26 사태 등 국내 정치 혼란까지 겹치면서 이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8.7%까지 끌어올렸다.
이로 인해 한국 경제는 경제개발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1.5%)을 기록했다. 물가는 상승했지만 경제 성장률은 떨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온 것이다.
이는 수입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구조에 기인했다.
1970년대 한국 경제는 중공업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중공업은 대표적인 에너지 집약 산업구조다.
이같은 수입에너지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정유·석유화학 등 에너지 민감 업종의 비중이 여전히 높고, 중동 원유 의존도(70.7%)는 구조적으로 고착돼 있다.
유가 충격이 장기화될 경우 성장률 하락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은 지금도 유효하다.
달라진 점도 있다. 2차 오일쇼크 당시 한국에는 전략비축유 제도 자체가 없었다. 정부가 한국석유공사를 설립하고 비축사업을 공식 추진한 것은 쇼크가 절정에 달한 1980년부터였다. 충격이 완충 장치 없이 고스란히 생산·소비 현장으로 전달됐다.
지금은 정부와 민간 합산 약 2억 배럴, 208일분의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어 단기 수급 충격의 완충 여력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양호하다.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동 상황점검 관련 긴급 관계부처회의 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수출기업 적신호…해상 운임 80% 증가 가능성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1%로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이번 중동 사태 이전에 작성된 수치다.
그러나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미·이란 전쟁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경우 소비자물가가 추가로 1.1%포인트(p)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물가 상승이 임금 인상률을 앞지를 경우 가계 실질구매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20원으로 전년 대비 2.9% 인상됐다. KDI는 올해 실질임금 상승에 따른 민간소비 증가를 1.7%로 전망했는데,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 이 전망치 자체가 훼손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유가 상승은 수출 중소기업에도 직접적인 비용 충격을 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호르무즈 해협 대신 우회 항로를 이용할 경우 해상 운임이 기존 대비 최대 80%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육로 운송과 통관 절차 기간도 최대 5일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한국해양진흥공사가 4일 발표한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제한 상황에 따른 해운·물류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원유운반선(VLCC)의 중동-중국 노선 운임은 지난 2월 13일과 비교해 약 3.3배 상승했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제한 이후 물동량은 80% 이상 감소한 상태다. 이로 인해 재고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더 직접적인 충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는 현 상황이 과거 오일쇼크나 팬데믹 수준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현재 국제유가는 작년, 재작년에도 비슷한 수준이었던 만큼 아직 대규모 위기를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면서도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한 상황별 계획을 마련했고, 관계부처와 조율 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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