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정책, "작은 일을 많이, 빨리"도 좋지만 [기자수첩-유통]

남가희 기자 (hnamee@dailian.co.kr)

입력 2026.03.12 07:00  수정 2026.03.12 07:00

정책 속도전 속 기업 목소리는 뒷전

교복 가격 논의에도 업계 참여한 공론장 필요

서두름보다 숙의가 먼저일 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에 계속해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제도 개선을 반대하겠다는 게 아니다. 40년간 현장을 겪어온 업계 목소리를 들어봐 달라는 것이다."


얼마 전 '학부모의 등골 브레이커'로 지목된 교복업계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교복을 '등골 브레이커'라고 지목하며 가격 인하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에 교육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부처들은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 맞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교육부는 정장형 교복을 폐지하고 생활복·체육복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교복 지원 방식 역시 현물 지급에서 현금이나 바우처 형태로 전환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또한 생활복을 포함해 티셔츠와 바지 등 품목별 상한가를 설정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교복업체의 입찰 담합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이와 함께 국민권익위원회는 전국 중·고등학교에서 시행 중인 ‘학교주관구매’ 제도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오는 22일까지 ‘국민생각함’을 통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교복 가격 인하를 위한 조치들이 빠르게 추진되는 가운데 정작 교복을 생산하는 당사자인 교복업계의 목소리는 정책 논의 과정에서 다소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모습이다.


교육부의 경우 현장의 의견을 듣기 위한 여러 자리를 마련하고 있지만, 정작 교복을 생산·공급하는 업계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공식적인 자리는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서울 TP타워에서 학생과 학부모, 학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교복 제도 개선 간담회를 열고 현장 의견을 청취했다.


교복업계는 정책이 급격히 전환될 경우 대부분 소상공인으로 구성된 교복업체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미 확보해 둔 원단과 생산 물량이 그대로 재고 부담으로 남게 되면 중소 업체들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업계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소 1~2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고 제도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정장형 교복 폐지가 오히려 학부모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교복 대신 사복 착용이 확대될 경우 고가 패딩이나 특정 브랜드 의류 소비가 늘어나며 과거처럼 ‘사복 계급화’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복이 일정 부분 가격 완충 장치 역할을 해왔다는 주장이다.


업계는 또 정부가 추진하는 ‘생산자 협동조합’ 방식 역시 형평성 논란을 낳을 수 있다며 충분한 논의를 위한 공론장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부 협동조합에 혜택이 집중될 경우 조합에 속하지 않은 소상공인 업체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생활 물가 부담을 낮추겠다는 대통령의 정책 취지에는 공감대가 크다.


다만 기업을 단순히 ‘가격 인상의 주범’으로만 바라보고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면 정책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직면할 수 있다.


시장 구조와 현실을 외면한 채 ‘가격’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시장 왜곡이 발생하고 그 부담은 결국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비단 교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소확행’ 정책을 강조하며 생리대, 유가 등 생활 물가와 직결된 사안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빠르게 만들어내겠다는 취지 자체에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단순히 가격 문제를 기업의 책임으로만 바라보고 정책적으로 조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경우 자칫 시장의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경제학의 기초인 경제학 개론에서도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정책은 시장의 균형을 흔들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가격이 시장에서 형성되는 수준보다 낮게 설정될 경우 공급 감소나 품질 저하, 비공식 거래 등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교과서적인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말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21차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정이 결국 멋진 이상, 가치, 이념, 지향을 실천하는 측면도 있지만, 결국은 삶을 개선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면서 “작은 일을 많이, 빨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큰 일을 붙잡고 끙끙 앓으면서 시간 보내지 말고, 그것은 그대로 고민하되 작고 쉬운 일부터 신속하게 해치워달라"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의 말처럼 ‘작은 일을 많이, 빨리’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공간이다.


각 당사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기업 현장의 목소리도 귀 기울이고 충분히 고민해봐야 한다. 어떤 정책은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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