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조업 유도한다지만...24시간 연속 공정엔 '그림의 떡'
97% 수혜의 함정...친환경 공정 전환할수록 부담 가중
'저탄소 지원법' 국회 등판..."기간산업 연착륙 도와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야적장에 철강제품이 쌓여 있는 모습.ⓒ뉴시스
정부가 49년 만에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를 ‘낮은 싸게, 밤은 비싸게’로 전면 개편했으나 철강업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태양광 발전이 풍부한 낮 시간대로 조업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지만 24시간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 기간산업 현장에서는 탄소중립 전환 동력마저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철강·석화 등 주요 에너지 다소비 기업들은 최근 발표된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에 따른 비용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전력이 내놓은 이번 개편안은 태양광 출력이 넘치는 낮 요금을 킬로와트시(kWh)당 최대 82.1원 인하하는 대신, 저녁과 심야 요금을 인상하는 것이 골자다. 산업용 전기 요금은 최근 4년 만에 70% 넘게 급등하며 기업들을 압박해왔다. 정부는 이번 개편으로 ‘산업용(을) 요금’을 사용하는 사업장 4만여 곳 중 97%인 3만8000여 곳이 인하 효과를 볼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평일 낮 조업 비중이 높은 중소 제조업체의 부담이 경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자체 발전소를 보유한 정유·석화 대기업이나 24시간 설비를 멈출 수 없는 철강·시멘트 업체들의 우려는 여전하다. 연속 공정 산업의 경우 원료 투입부터 제품 생산까지 전 공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특정 시간대에만 가동률을 높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낮 시간의 요금 인하 혜택은 누리지 못한 채, 그간 원가 절감의 보루였던 저렴한 심야 전력 단가 인상분만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처지다.
철강업계가 더 큰 위기감을 느끼는 대목은 미래 경쟁력과 직결된 탈탄소 전략이다. 현재 철강업계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기존 고로를 전기로로 교체하고 궁극적으로는 전기를 대량 소비하는 수소환원제철 도입을 추진 중이다.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화석 연료 대신 전기를 선택할수록 오히려 전기료 인상이라는 벌칙을 받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 셈이다. 대형 철강사의 경우 전기료가 kWh당 1원만 올라도 연간 수백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발 과잉 생산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에너지 비용마저 치솟으면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을 위한 투자 재원마저 바닥날 수 있다”며 “천문학적인 투자비를 쏟아붓는 상황에서 운영비(전기료) 부담까지 매년 커진다면 어떤 기업이 공격적으로 친환경 전환에 나서겠느냐”고 토로했다.
개편안은 다음 달 16일부터 적용되고 유예를 신청한 기업에는 9월 30일까지 기존 요금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산업계는 요금 체계 개편이라는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기간산업의 연착륙을 돕는 ‘핀셋 지원’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치권에서도 긴급 수혈에 나섰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박상웅 의원(국민의힘)은 전날 ‘환경친화적 산업구조 전환 촉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이 저탄소 공정으로 전환할 때 국가가 실질적인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국내 용광로 11기를 205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공정으로 전환하는 데 약 47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현재 정부의 실증 사업 국비 지원액은 3088억 원에 불과하다. 개정안은 이 같은 지원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 지원금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박상웅 의원은 “단순히 감축 의무만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산업 경쟁력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실증과 설비 구축, 기술 전환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할 때 산업계가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파고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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