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7년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어온 알렉스 퍼거슨 감독(72)이 전격적인 은퇴를 선언했다.
퍼거슨 감독은 8일(한국시각)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 결정은 가장 신중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단 한 번도 가볍게 여긴 적이 없다"며 "지금(올 시즌)이 은퇴할 적기"라고 말해 은퇴를 공식화했다.
이 시대 최고의 명장이 역사 속으로 퇴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와 맨유의 황금시대를 풍미했던 박지성(31·QPR)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박지성 축구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명의 외국인 감독을 꼽으라면, 거스 히딩크와 알렉스 퍼거슨을 들 수 있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과 PSV 아인트호벤(네덜란드)을 통해 무명의 박지성이 축구에 눈을 뜨는 계기를 제공했다면,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진정한 ‘아시안 월드스타’로 끌어올린 명장이다.
박지성의 맨유 입단은 퍼거슨 감독의 권유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2005년 챔피언스리그 당시 박지성은 에인트호벤 주역으로 팀을 4강까지 끌어올렸고, 현장에서 관전하던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의 환상적인 팀플레이와 공간창출 능력에 매료됐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맨유 입단을 권유했고, 이에 감동받은 박지성은 고심 끝에 당당히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박지성 축구인생에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박지성이 퍼거슨 감독과 맨유에서 보낸 7년은 곧 그의 커리어에서 최고의 전성기였다. 맨유도 이 기간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의 감격을 누리며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입단 초기만 해도 미지의 아시아선수에 대해 의문의 시선이 더 많았고, ‘유니폼 판매용’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들었지만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의 굳건한 신뢰 속에 얼마 지나지 않아 맨유 전력의 한 축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특히, 중요한 빅매치나 강팀과의 대결마다 퍼거슨 '비밀병기'로 활약하며 주어진 전술적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만큼 잃은 것도 있었다. 쟁쟁한 스타들이 즐비했던 맨유에서 박지성은 붙박이 주전도, 팀을 이끌어가는 주연이 될 수 없었다. 동료들의 움직임을 살리는 이타적인 팀플레이어로 입지를 굳혔고, 축구선수로서의 전성기에 많은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지만 개인기록과 공격본능을 잃었다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퍼거슨 감독에게 받았던 가장 큰 상처는 뭐니 뭐니 해도 2008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엔트리에서 제외된 사건. 박지성은 맨유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기까지 가장 크게 기여한 선수 중 하나였고, 모두가 그의 결승전 활약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끝내 박지성을 제외했다.
당시 맨유는 첼시와의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훗날 퍼거슨 감독은 "내 축구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며 제자를 위로했지만 실망은 컸다. 박지성은 이후에도 두 번이나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선발 출전했지만, 정작 팀은 두 번 모두 바르셀로나에 패했다.
맨유에서의 마지막 해인 2012년, 박지성은 주전 경쟁에서 밀려 어려움에 처했다. 안토니오 발렌시아와 애슐리 영 등 박지성 경쟁자들이 가세하며 입지가 좁아졌다. 시즌 후반기에는 거의 출전기회도 잡지 못했다.
박지성이 맨유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마지막 경기였던 2011-12시즌 36라운드 맨시티전. 오랜만에 선발출전기회를 잡았지만 아야 투레 봉쇄라는 미션에 실패하며 조기 교체됐고, 결국 맨유는 이 경기에서 패하며 맨시티에 역전우승을 허용했다. ‘맨유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던 박지성은 팀내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시즌이 끝나고 맨유를 떠나기에 이르렀다.
퍼거슨 감독과 박지성의 결별과정은 비록 아름답지 못했지만 헤어진 이후에도 서로에 대한 존중은 변치 않았다. 퍼거슨 감독은 항상 박지성의 팀을 향한 헌신과 이타적인 플레이, 뛰어난 전술 소화력에 대해 수없이 칭찬했다. 박지성이 QPR 유니폼을 입고 고전하던 시기에는 퍼거슨 감독이 직접 벤치를 찾아 박지성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감독과 선수로서 때로는 갈등도 있었지만, 퍼거슨에게 박지성은 누구보다 헌신적이고 모범적인 제자였고, 박지성에게 퍼거슨은 축구인생의 클래스를 높여준 위대한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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